
서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고람 전기의 그림이다. 오른쪽 아래에 '역매인형(亦梅仁兄) 초옥적중(草屋笛中) 고람사(古藍寫)'라고 화제를 써서 역매 오경석(1831-1879)에게 그려 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전기가 여섯 살 위였다. 전기는 시서화를 다 잘했는데 서화의 감식에 뛰어나 감정도 하고 거간(居間)도 했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고 진위를 판단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오경석은 역관으로 수 십 년 청나라를 드나들며 서화, 금석문, 탁본 등을 대대적으로 모은 수장가이다. 오경석이 수집한 국내외의 풍부한 컬렉션을 물려받은 외아들이 위창 오세창이다. 오세창이 한국미술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은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해 대물림하였기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이다.
오경석은 만년에 회고하기를 "나와 같은 벽(癖)을 갖고 있던 사람이 전기였는데 불행히 일찍 죽어 내가 수장한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죽은 그를 다시 살려내 같이 토론하며 감상할 수 없을까. 이렇게 쓰자니 눈물을 멈추지 못하겠다."라고 했다. 이들이 서화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주고받은 편지들 중 오경석이 받은 편지를 오세창이 정리해 놓았다. 오경석은 김정희에게 '세한도'를 선물 받은 선배 역관 우선(藕船) 이상적에게 글씨와 시문을 배웠고, 같은 중인 출신인 전기와 함께 그림과 글씨를 뜯어보며 실물을 통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이상적, 전기와의 인연이 오경석을 대수장가의 길로 이끈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전기는 오경석을 '매화초옥(梅花草屋)'의 주인공으로 그렸다. 이 무렵 유행한 매화서옥(梅花書屋)류 그림은 매화그림이자, 설중매를 그린 겨울산수이며, 매화를 사랑한 북송의 임포 이야기인 고사도(故事圖)이기도 하다. 오른쪽 아래 거문고를 어깨에 멘 다리 위 인물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오경석을 찾아가는 전기 자신일 것이다.
전기는 매화서옥도의 '은거하는 한사(寒士)'라는 주제를 '동호(同好)의 우정'으로 살짝 바꾸었다. 호분으로 점찍은 흰 매화, 청록색 굵은 태점, 붉은 옷 등 색채 감각은 전기의 발랄한 감성을 보여준다. 거문고를 멘 인물은 이백의 시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의 마지막 구를 떠올리게 한다.
양인대작산화개(兩人對酌山花開)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
아취욕면군차거(我醉欲眠君且去) 명조유의포금래(明朝有意抱琴來)
두 사람 마주 앉아 술잔 드니 산꽃이 피네
한 잔 한 잔 다시 또 한 잔
나는 취해 자려하니 그대는 이제 돌아가시게
내일 아침 내 생각나거든 거문고 갖고 오게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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