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울진 스토리텔링 문화공모전 수상작] 대상 '도깨비의 금강주(金剛酎)'<4·끝>

삽화 김진영 명덕창조의아침 원장
삽화 김진영 명덕창조의아침 원장

대상- 단편소설 '도깨비의 금강주(金剛酎)' 박효정

"금강주? 그런 술도 있습니까?"

김서방이 정령에게 물었다.

"그래 있다. 금강산에 계신 신선이 만든 술인데 만드는 방법은 저놈이 말한 대로다. 한 모금만으로도 능히 사람에게 씐 악귀와 병을 쫒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무리 신선의 술이라도 그 많은 고을 사람들에게 소주 2말을 어찌 다 나누어 먹입니까? 턱없이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김서방이 정령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갓난아이는 코밑에 찍어 바르고 걸음을 뗀 큰아이는 입술에 아주 조금만 발라주면 된다. 큰아이와 아녀자는 반 홉, 장정들도 한 홉이면 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 모든 일은 오늘 밤에 다 준비되어야 한다."

정령은 오니를 당산나무에 묶어두고 다시 도깨비들을 불러 모았다.

"쌀은 읍네 김부자 집에서 가져오면 되고 누룩은 북면 박씨네 종가 집에 있는데 20말이나 들어가는 독이 어디 있겠습니까?"

쫄매가 걱정스레 말했다.

"걱정마라. 내가 딱 스무 말 들어가는 항아리다."

김서방이 결연하게 말했다.

"맞네, 맞아. 우리 김서방 귀물이 스무 말짜리 항아리였네. 근데 영감 오니 놈이 말한 관솔은 어디서 구합니까?"

두방이 정령에게 대해 물었다.

"그것은 내 생각해 둔 것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지금 당장 움직여라 일각이 급하다. 쫄매와 이대감은 쌀과 누룩을 가져오고 두방과 김서방은 각각 너희들의 귀물을 가져오라."

정령의 말이 끝나자 도깨비들은 튕겨져 나가듯 흩어졌다. 그리고 채 한시도 지나지 않아 재료와 귀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다 왔느냐? 그럼 관솔을 구하러 가자. 따르거라."

정령이 도깨비들을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대왕소나무 앞이었다.

"저 소나무의 둥치 안에 수백 년 묵은 관솔이 있다. 그것을 꺼내야한다."

정령이 말하자 두방과 김서방이 깜짝 놀란다.

"아니 영감, 저 나무는 영감이 거하는 소나문데 도끼로 찍으면 영감은 어쩌고요?"

김서방이 묻자 정령이 초연하게 말한다.

"괜찮다. 정령은 귀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나무든 바위든 어디든 깃들 수 있다. 그러니 걱정 말거라."

그러고는 두방과 김서방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두방, 그리고 김서방 자네들과 참 짧지 않은 인연이었는데 아쉽게도 자네들은 이제 곧 소멸할 운명이네.

"엥 왜요? 김사방과 두방이 왜요? 아직 기운이 펄펄한데."

순간 눈이 동그래진 쫄매와 장대기, 이대감이 정령을 바라본다.

"두방은 도끼질을 하며 귀물의 흔적이 없어질 것이며 김서방 또한 항아리에 술이 끓기 시작하면 사라질 것이네. 내 언젠가 세상을 도울 생각으로 자네들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 순간이 되니 덧없이 살아온 나도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드는구나."

정령의 말에 두방과 김서방이 한동안 말이 없다. 그러다 김서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에~잉 괜찮습니다. 어차피 너무 오래 살아서 지겨워지려고 하던 참입니다. 이렇게 오래 산 것도 영감 덕분인데 도깨비가 미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맞다. 춘하추동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인데 요렇게 세상 필요할 때 값지게 없어지는 것도 좋은 팔자다. 안 그런가 김서방? 히히."

김서방 말에 두방도 장단을 맞춘다.

"맞기는 뭐가 맞아. 지난번부터 팔자팔자 하더니,, 개뿔 같은 도깨비 팔자 누가 알아는주나? 술 한 잔 쳐줄 인간도 없을 것인데 값어치는 또 무슨 값어치고?"

쫄매가 소리치며 울먹인다.

"두방 그리고 김서방,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서러워는 마시게. 일이 끝나면 불영사주지께 일러 자네들을 위해 제를 올려주고 천문지기에게도 각별히 부탁하겠네. 그리하면 자네들은 넋이 사라지지 않고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네."

"예, 영감 고맙네요. 정말 고맙네요. 우리 같은 잡귀를 이리도 극진히 안아 주시니 내 사람이 아닌 축생하더라도 영감을 잊지 않겠습니다."

두방과 김서방이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숙여 정령에게 인사한다.

"이봐 친구들, 이러다 날 새겠네."

김서방이 재촉하자 두방이 손살 같이 나무에 오른다.

"천명이오! 천명이오! 천명이오! 세상 살리는 도끼질이니 산천에 초목은 용서하시오!"

두방은 천명을 세 번 크게 외치고 도끼질을 시작했다. 천둥소리를 내며 내리찍는 두방의 도끼질에 몇 아름되는 대왕소나무도 뿌리 채 휘청거렸다.

그러길 잠시, 검붉은 관솔이 소나무의 한중간에서 비칠 무렵 두방이 나무를 내려온다.

"안되겠네. 이제는 안 되겠어. 이대감 자네가 마무리해주게."

두방이 이대감에게 도끼를 건넸다. 귀물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탓이다. 두방은 정령에게 절하고 친구들을 돌아본다.

"김서방 나 먼저가 기다릴게. 자네들 착하게 오래오래 잘 사시게."

두방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흐물흐물 사라져버렸다.

"아이고 두방, 아이고 우리 두방, 북면 섶다리 밑에 각설이는 이제 어쩔 것이며 도깨비 가슴에 뻥 뚫어놓은 구멍은 또 무엇으로 막을꼬?"

쫄매가 탄식하며 운다.

"에~헤이, 울어도 나중에 울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이대감 어서 빨리 관솔을 꺼내오시게."

김서방이 이대감을 재촉한다.

이대감이 나무에 올라 도끼질을 다시 시작하고 잠시 후 사람 몸통만한 검붉은 관솔덩이 하나를 들고 내려온다.

"관솔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 술 담을 준비를 하자."

정령의 말에 쫄매는 고두밥을 찌고 이대감은 관솔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 사이 김서방은 계곡 깊은 곳, 처음 솟아나는 물을 여섯 말 길어다 놓았다. 모든 준비가 다 되자 정령은 도깨비들을 뒤로 세우고 하늘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정령의 기원에 도깨비들도 같이 합장을 했다. 그러고는 모든 재료를 항아리에 조심스레 담았다. 섞인 술의 원료들이 뽀얀 빛을 내며 항아리의 입구까지 차오르고 그 위에 실금 같은 하얀 초승달이 찰랑거리며 떠있다.

"됐다. 이제 다 됐다. 나는 이 길로 고을의 사또를 만나 앞으로의 일을 의논할 것이니 너희들은 이곳을 엄중히 지키며 술을 내리 거라."

정령이 도깨비들에게 당부했다.

"예, 영감. 그런데 다시 오시는 날에는 저를 볼 수 없으니 지금 인사드리겠습니다. 부디 이놈들도 저처럼 잘 돌봐 주십시오."

김서방이 정령을 보며 절을 올렸다.

"그래 김서방, 잠시 눈 깜빡할 찰라 일걸세. 사람으로 태어나도 나를 알아볼 것이니 그때 다시 긴 이야기를 나누세."

정령이 김서방의 어께를 쓰다듬었다.

"엥 잘 됐네, 잘 됐어. 그럼 두방과 김서방이 저희도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까요?"

쫄매가 손벽을 치며 정령에게 묻자 정령은 짧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는 저녁, 정령이 숲에 들자 남은 쫄매와 이대감이 정령을 맞았다.

"금강주가 다됐습니다. 두말입니다. 정확하게 두말입니다."

이대감이 작은 항아리 두 개에 나누어 담은 술을 정령에게 보였다.

"아이고, 산을 들어 옮기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요. 술이 얼마나 독하고 향이 깊은지, 술을 내리다 두 번이나 쓰러질 뻔 했습니다."

쫄매도 공치사를 잊지 않는다.

"고생했네. 오늘 밤 자정 무렵 이것을 관아 마당 한가운데 가져다 놓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망양정에 들리면 자네들을 위한 잔칫상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네. 고을 사또를 시켜 충분히 준비하였으니 식솔들을 불러 다들 배불리 먹고 가시게."

정령은 닷새 후 망양정 정자에서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하고 다시 고을을 향해 급히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관아의 마당 한가운데 금강주가 놓여있고 관아 대문밖에는 벌써부터 고을의 수많은 병자들이 줄지어 서있다. 아이든 어른이든 병자들은 저마다 정령이 일러준 대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병자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관아의 불이 삼일 낮밤을 꼬박 켜져 있어야 했다.

금강주의 효험은 그야말로 신통방통했다. 업혀온 아이는 걸어서 관아를 나갔고 아무리 위급한 병자도 삼일 안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렇게 닷새가 흐르자 고을에는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어졌고 괴질은 말끔히 사라졌다.

오니가 옮긴 괴질이 사라진 그날 저녁, 사람들은 집집마다 초롱을 대문밖에 내걸었다.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뿐만 아니라 망양정 바닷가에 수많은 횃불을 밝혀 일대 장관을 만들어주었다.

"그래, 저 풍경을 보니 자네들 기분이 어떠한가?"

망양정에서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정령이 도깨비들에게 물었다.

"아이고 영감,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노랫가락 없어도 어깨가 들썩들썩 한 것이 도깨비 팔자도 이만하면 사람 부럽지 않네요. 히히히."

쫄매가 대답하고 나머지도 웃었다.

"근데 오니란 놈은 어찌하였습니까?"

두방과 김서방처럼 이백년 살겠다며 새 귀물을 받은 장대기가 정령에게 물었다.

그 시각, 왜나라로 향하는 작은 배가 풍랑을 만나 고전하고 있었고 오니는 그 배의 뱃머리에 묶여 죽어라 파도를 맞고 있었다.


※금강주(金剛酎) : 소나무가 주원료. 솔 향이 진하며 병을 고친다는 신선주. 일부에서 아직 전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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