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은 사회를 뒤흔들어 놓는다. 종국에는 그 사회를 붕괴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가져온 천연두로 인구가 몰살되면서 멸망한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재앙은 의외의 발전적 변화를 낳기도 한다.
유럽 인구 2천500만~3천500만 명이 희생된 흑사병이 그렇다. 중세 장원경제를 붕괴시키고 근대의 문을 연 것이다. 페스트는 농노(農奴)를 격감시켰다. 이에 따라 노동자 임금이 크게 뛰었다. 흑사병이 유행하는 동안 평균임금은 2배 상승한 반면 땅값(지대)은 50% 이상 하락했다.
그 결과는 영주들의 줄파산이었다. 이를 막아보려고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흑사병 발생 이전으로 동결하는 법까지 만들었으나 소용없었다. 임금 상승은 이후로도 100년간 더 지속됐다.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도 마찬가지다. 이 사고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지만, 강대국 소련의 실체도 함께 폭로됐다. 미국과 함께 2대 슈퍼 파워라는데 알고 보니 비도덕적이고 허약한 국가임이 드러난 것이다.
국가보안위원회(KGB)는 1982년과 1984년 3호기와 폭발한 4호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는 기밀에 부쳐진 채 아무런 개선 조치도 없었다. 사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련 당국은 4일간이나 '보안'을 유지했다. 그러다 대기 중 방사능 물질 증가에 놀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진상 공개를 촉구하자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런데 그게 기가 막혔다.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결코 위험하지 않다." 그 끝은 소련 붕괴였다. 사고 뒤 '개혁'과 '개방'을 들고 나온 고르바초프는 훗날 "체르노빌이 소련 붕괴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우한 폐렴 사태로 중국의 시진핑 1인 독재체제가 흔들릴 조짐이다. 폐렴 확산 초기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실상을 은폐·축소하는데 급급했다. 이에 지식인들이 시진핑 체제의 무능과 비도덕성을 비판하자 이들을 모두 체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재 이들의 행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SNS상에는 우한 사태를 체르노빌 사고에 빗대며 정부와 공산당에 대한 노골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한 사태가 공산독재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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