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 "고소설 문학관 대구에 설립해야"

40여년 간 필사본 고소설 487종 수집, 7년 동안 고소설 100선 역주본 간행
"지역서 가장 많이 창작되고 읽혀, 한국문화산업 틀 닦는 역사적 과업"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경북대 명예교수)는 40여년 간 국문학자로 활동하면서 수집해온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경북대 명예교수)는 40여년 간 국문학자로 활동하면서 수집해온 '필사본 고소설'을 7년에 걸쳐 현대적으로 번역(역주)하는 작업을 해왔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BTS(방탄소년단)가 글로벌 팬덤을 이끌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이제 한류(韓流)가 세계문화의 주류로 부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화가 상품의 생산 과정을 밟기 위해서는 참신한 재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그래서 조상들이 쌓아온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서 가치를 끊임없이 재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로소 한류(韓流)가 외국 것의 단순 모방이 아닌 진정한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김광순(경북대 명예교수) 택민국학연구원장은 40여년 간 국문학자로 활동하면서 수집해온 '필사본 고소설'을 7년에 걸쳐 현대적으로 번역(역주)하는 작업을 해왔다. '김광순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완간을 앞두고 최근 김 원장을 만났다.

-'김광순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역주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대학강단에서 40여년간 강의를 하면서 고소설을 수집해왔다.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것이 모두 487종이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 고소설의 소중함을 알고 내놓기 꺼려하는 경우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다. 귀중본 수집을 위해 봉급을 몽땅 털어넣는 일도 많았다. 수집한 것 중에는 유일본 희귀본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도 많다.

이 중에서 대중들에게 많이 읽히고 소설사적 가치가 큰 것 100편을 모아 현대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고전적 가치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하여 대중에게 내놓을 때, 과거의 문화가 살아있는 문화로 발돋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예정된 18편이 완간되면 7년 간의 작업은 마무리된다.

-중요한 작업이긴 하지만 민간차원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나?

▶대구시의 재정 지원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많고 적음을 떠나 대구시가 7년 간 지속적으로 문학분야에 투자한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정병호 경북대 교수, 권영호 경북대 교수, 강영숙 택민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김동협 동국대 명예교수, 백운용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박진아 택민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등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82편을 간행했고, 올해 나머지 18편을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필사본 고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어려움들이 있나?

▷고소설의 대부분은 필사자가 개성있는 독특한 흘림체 붓글씨로 쓴 데다, 띄어쓰기가 없고 오자와 탈자가 많다. 이마 사라진 옛말은 물론이고 그 지방의 독특한 방언이 많이 섞여 있다. 더군다나 필사자 중 상당수가 교육수준이 낮은 서민계층이어서 부정확한 어휘나 문장이 적지 않다. 이를 모두 파악해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현한다는 것은 정말 지난한 작업이다.

번역작업에 참가한 연구진은 사라지기 직전에 놓인 필사본 고소설을 번역하는 작업이야 말로 대한민국 창조문화산업의 기틀을 닦는 역사적인 과업이라는 사명감으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역주본. 2020년 2월 현재 82편이 간행 완료되었고, 올해 안에 나머지 18편이 현대적으로 재현될 계획이다. 택민국학연구원 제공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역주본. 2020년 2월 현재 82편이 간행 완료되었고, 올해 안에 나머지 18편이 현대적으로 재현될 계획이다. 택민국학연구원 제공

-필사본 고소설 100선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과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정부는 한문고전의 국역 작업에 치중할 뿐,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우리글로 된 작품의 현대화에는 무관심하다. 담양의 가사문학관에서 가사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한 것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글고전의 현대화 작업은 개인이나 상업적 출판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에 '고소설 문학관'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연구진의 바람이자 주장이다.

-왜, 반드시 대구여야 하나?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고소설 문학관'이 지어져도 마찬가지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경주 남산 용장사에서 저술되었다. 또한 대구경북은 고소설이 가장 많이 창작되고 읽힌 곳이다. 중세 대구는 제지공업과 유통이 발달한 행정·산업·문화의 중심도시였다. 소설을 읽어주는 강담사나 강독사가 비교적 최근까지 달성공원과 두류공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만큼 대구에는 고소설 독자층의 두터웠다. 그래서 한국 고소설 문학관은 역사성과 문학성을 고려할 때, 반드시 대구에 설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워드〉

고대소설과 고소설?= 한국의 고대소설이라는 표현은 초창기 학자들이 잘못 쓴 용어이다. 우리나라 고대에는 소설이 없었고, 주로 중세(17, 18세기) 이후 많이 창작되었다. 봇글씨로 한지에 쓴 소설이어서 '필사본 고소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한국고대소설이 아니라 '한국고소설'이 정확한 표현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