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범학교는 1929년 6월 1일 개교하였다. 그중에 심상과(尋常科)는 100명 정도의 정원을 두었고 수업 연한은 5년이었다. 대부분의 조선인 학생들이 심상과에 입학하여 수업을 들었는데, 학비는 전액 면제받았고, 성적 우수자는 관비(官費관청에서 내는 비용)까지 지급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한국인 교원과 일본인 교원을 분리하여 양성하면서 승진과 급료 등에서 차별하였다. 또한 한국인 학생들은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중도 퇴학당하거나 동일하게 규율을 위반하더라도 일본인 학생에 비해 더욱 엄격하게 처벌받았다.
여기에 민족의식을 지닌 현준혁(1906~ 1945) 선생과 김영기(1901~1984) 선생이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항일의지를 북돋우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준혁 선생은 학생들에게 영어와 조선 역사를 가르치면서 한글 보급에 힘썼다. 그러던 중에 1930년 10월 그가 사회과학연구그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자, 1~3기생들이 이에 가담하여 '자본론'과 '마르크스주의 강좌' 등의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독립정신을 키웠다. 그러다가 1931년 11월 일본 경찰에 적발되는 바람에 현준혁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3기생 40명은 퇴학당하였다.(사회과학그룹 사건)
이후 부임한 김영기 선생은 조선어와 한문을 가르치며 언어가 민족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1938년에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자, 6기생 18명이 민요·동요·동화·동시고시조 등을 수집하고 정리한 '민요집'을 발간하기로 결의하였다. 마침 김영기 선생의 사감 당직일에 맞추어 기숙사에서 등사하여 60부를 제작해서 배부했던 것이 1941년 9월에 탄로가 나면서 8명이 구속되었다.(민요집 사건)
1939년 7월 21일에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근로보국대에 들어가 여름방학 동안 왜관에서 약목까지의 경부선 철로 복선화 공사에 동원되어 제방을 쌓았다. 그러나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에게 주어진 작업량이 불공평하였고, 작업 도중에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간에 충돌이 발생하였는데, 학교 당국이 일본인 학생 편을 들자, 이에 격분한 7기생 일부는 7월 26일에 평소 민족 차별을 일삼아 공분을 쌓았던 일본인 교사 마에조노·사쿠라오카모토 등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구타하였다. 이에 한국인 학생 7명이 퇴학당하고 11명이 정학 처분을 받았다.(왜관 사건)
9기생 일부는 왜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백의단(白衣團)을 조직하였는데, 조선 역사와 문학 서적 및 잡지 등을 탐독하고 시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보다 앞서 1938년 무렵에 8, 9기생이 중심이 되어, 민족의식이 담긴 책자를 발행하고자 윤독회(輪讀會)를 만들었는데, 역사서와 역사소설 등을 읽은 후에 토론하고 작성한 원고를 수집하여 편집해서 '반딧불'을 제작하였다.
1940년 11월 무렵에 8~10기생들이 문예부(文藝部)를 창설하였는데, 자신들이 직접 쓴 작품들을 감상하고 조선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며 시국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학생'을 출간하였다. 또한 1940년 12월에 들어 등장한 무우단(無憂團)은 일제의 지원병·공출·징병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해외 독립단체와의 연락을 모색하면서 '문장연구'를 발간하였다. 한편 1941년 1월 즈음에 창립된 연구회(硏究會)는 각자의 전공 분야 연구를 발표하였고, 재능이 뛰어난 한국인 학생들을 선별하여 민족지도자로 육성하고자 천재교육을 실시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끝으로 1941년 2월에 나타난 다혁당(茶革黨)은 조선 역사와 문화 서적에 대한 독후감을 발표하였고, 방학 때 각자 고향에서 야학을 개설하여 문맹을 퇴치하였으며 독립군에 가담하고자 공휴일과 일요일에 대구 앞산에서 군사훈련을 감행하였다.
이렇듯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민족말살통치 시기에도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내에는 그들의 거룩한 항일정신을 떠올리며 불의에 맞서려는 용기를 기리는 '대구사범항일학생의거순절동지추모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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