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거필택린(居必擇隣)

임종대
임종대

살 집을 구할 때는 이웃을 살피고 가려서 정한다는 뜻이다. 집은 추위와 더위와 비바람을 막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넓게는 집안의 문벌(가문·家門)과 집안의 가계(家系), 집안 내림(가통·家統)의 상징이기도 했다. 안주와 번영은 물론 내면적인 근거와 뿌리의 상징성을 띠었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그 의미가 소실되어가고 있다.

고려 명종(1181년) 때 노극청(盧克淸)이라는 사람이 산관(散官)으로 있다 직장동정(直長同正)이 되어 자리를 옮기자 집을 팔려고 내 놓게 되었다. 마침 이부낭중(夷部郞中) 현덕수(玄德秀)가 여기저기 살 집을 알아보던 중 노극청의 집을 사게 되었다. 덕수는 노극청의 곧고 바른 인품과 이웃들의 넉넉한 인심에 끌려 노극청의 아내가 부르는대로 백은(白銀) 12근을 주고 샀다. 현덕수는 모처럼 좋은 집과 금보다 귀한 훈훈한 이웃과 거필택란할 생강에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외지에서 돌아온 노극청이 아내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내가 이 집을 살적에 백은 9근을 주고 사서 그간 수리한 곳도 없이 편안하게 살았는데 백은을 3근이나 더 받은 것은 도리로 따질 때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극청은 그 길로 백은 3근을 가지고 현덕수를 찾아갔다. 극청이 다짜고짜 백은 3근을 현덕수 앞에 내놓으면서 내 도리상 도저히 이것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덕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찌 당신은 의(義)를 내세워 경우를 찾고 나는 못찾게 합니까? 백은 12근은 요즘 시세로 합당한 금액이니 돌려주려는 생각은 마시오."
현덕수가 온당한 값을 치른 것이니 받지 않으려 하자 노극청이 단호히 말했다.
"나는 지금껏 도리를 따라 살아온 사람인데 이 은을 받지 않겠다면 백은 12근을 다 돌려줄테니 매매는 없는 것으로 합시다."

노극청이 물러날 기세가 없이 강하게 나가자 현덕수는 어쩔 수 없이 백은 3근을 받았다. 백은을 받아든 덕수는 '내가 어찌 의로움이 극청만 못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백은 3근을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 일이 있던 고려 명종 때는 무신들이 득세하여 너나 할 거 없이 이익만을 쫓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이기심이 팽배해 있는 때에 이 이야기가 회자되자 신선한 충격이 되어 온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한약제의 사간(射干)이라는 나무는 키가 4치 밖에 안 되지만 백길 높이의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저 아래 산과 온갖 나무들을 굽어 볼 수 있다. 키가 커서가 아니라 서 있는 위치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쑥이 삼대밭 속에서 자라게 되면 부축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 키가 크다.
난괴(蘭槐)의 뿌리는 향료가 되는데 그 뿌리를 오물에 담갔다가 내놓으면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탕이 나빠서가 아니라 적셔진 오물 때문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물질주의의 이기심에 물들어 있어 집을 팔고 사는데 있어서도 돈만을 앞세우고 있어 우리의 옛 풍속을 잃어가고 있다. 너와 내가 서로 양보하여 교필택우(佼必擇友) 즉 좋은 친구로 사귀는 옛 고려 선인들의 금과 옥조같은 고결한 숨결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노극청과 현덕수처럼 흐뭇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임종대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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