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불경기를 이기려면 0.1초를 붙잡아라.

필자의 회사에 큰 매출을 올려준 브랜드 닥터 명함. 빅아이디어연구소
필자의 회사에 큰 매출을 올려준 브랜드 닥터 명함. 빅아이디어연구소

유례없는 불경기에 우리는 숨 쉬고 있다. 생존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혹시 최근에 주변에서 "저기 광고비를 정말 많이 쓴데!"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광고주의 머릿속엔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 우리 브랜드를 팔 수 있을까'란 생각이 가득하다.

필자 역시 처음 창업을 했을 때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돈은 없는데 우리를 어떻게 알리지?' 그때는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누구든지 우리에게 광고만 맡겨봐! 멋진 광고로 죽여버릴 거야!'라는 독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건 필자만의 생각이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광고를 맡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투자하게 된 것이 바로 명함이었다. 처음 창업할 때는 거의 빈털터리 상태였지만 명함에 투자할 2만 원은 있었다. 미국의 뇌과학자 폴 왈렌(Paul J. Whalen)에 따르면, 우리는 뇌의 편도체를 통해 0.1초 만에 상대방의 호감도를 평가한다고 한다.

영업을 갈 때마다 늘 문전박대의 대상이었던 필자는 여기서 원인을 찾았다. '0.1초를 붙잡자. 그 짧은 시간에 상대방에게 호감을 줘서 우리를 팔자!'라고 다짐했다. 영업을 나간 어느 날, 운 좋게도 병원 원장님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네, 사기꾼 아닌가?"

"다른 회사는 광고를 공짜로 만들어주는데 당신은 뭔데 돈을 달라고 하나?"

실상은 이랬다. 당시 대구 지역의 광고 회사들은 거의 버스, 지하철 광고판을 입찰로 사들여 그 광고판을 쓰는 비용만 받았다. 즉, 부동산 비용만 받고 그 안에 들어가는 광고 기획, 카피, 디자인은 공짜였던 시장이었다. 그런 시장에서 아이디어 비용을 요구했으니 사기꾼으로 몰릴 만했다. 곧이어 원장님의 차가운 말이 쏟아졌다.

"내가 어제까지만 해도 음악회 갔다가 OOO 씨(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인)랑 술 마시고 왔는데 오늘 당신 같은 잡상인하고 미팅하고 있으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아리랑 TV의 KOREA TODAY에 소개된 필자의 명함. 아리랑TV 유튜브 채널
아리랑 TV의 KOREA TODAY에 소개된 필자의 명함. 아리랑TV 유튜브 채널

결국, 대화의 마무리는 내가 경력이 없으니 공짜로 내 광고를 써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끝났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대구에서 광고 회사를 창업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필자는 그저 크리에이티브를 쫓는 철없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광고의 매력이 뭔가? 바로 상황을 뒤집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우울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뒤집고자 노력했다. 사실은 원장님께서 비난의 말씀을 하실 때 아이디어가 스쳤다. '아 원장님은 사람을 고치는 의사시군요. 저도 의사입니다. 브랜드 고치는 브랜드 닥터요'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머릿속에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스친 셈이다. 그렇게 브랜드 닥터 명함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반 명함은 종이 한 장으로 끝나지만 나는 커버를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병원의 명함 같지만 커버에서 명함을 꺼내면 '브랜드 고칩니다'라는 카피가 보이도록 만들었다. 실력 있는 광고 회사니 우리를 써달라는 간절함이 담긴 명함이었다.

100원짜리 명함의 효력은 대단했다. 그 뒤로 문전박대가 사라진 것이다. 브랜드 닥터 명함을 내밀면 꼭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그 명함을 살펴봤다. 무언가 다른 디자인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 뒤로는 잠시 기다려보라는 말과 함께 미팅이 이루어졌다. 0.1초를 붙잡으니 팔 수 있었다. 창업한 지 7년 차인 지금 돈으로 환산하자면 이 명함은 제게 수십억을 벌게 해 준 셈이다.

이렇게 큰돈을 벌게 해 준 명함을 작년에 바꾸게 되었다. 한 명함을 가지고 너무 오래 사용했고 커버가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종이 한 장짜리 명함이라도 멋진 문구나 디자인이 있으면 팔릴 것이라 봤다. 지난 7년 동안 우리의 고생과 애환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글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광고주 미팅할 때 요즘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떠올랐다. "김소장님! 그 광고 만드신 분 맞으시죠!" 만나는 광고주분마다 경찰청, 인천시 교육청, W병원 광고를 말씀하시며 제가 맞는지 확인했다.

광고주가 자주 하는 질문의 답을 명함에 써두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광고주가 자주 하는 질문의 답을 명함에 써두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네, 그 사람 맞습니다"라고 말을 하게 될수록 '그냥 명함에 쓰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명함에 쓴 카피가 "네, 그 광고 만든 사람 맞습니다"이다. 남들이 봤을 때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광고비란 말조차 없던 대구시장에서 그 인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죽도록 고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명함을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겸손해야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사업을 하건 하지 않건 명함은 당신의 얼굴이다. 그 명함의 디자인, 서체 심지어 종이 두께까지 고객이 당신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상 유례가 없는 불경기인 것을 모르는 사업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인가? 거창한 투자는 부담되니 본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SNS에 매일 짧은 글을 오리는 것일 수도 블로그에 작은 사진을 올리는 일일 수도 있다. 명함 역시 3만 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소액을 투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자. 리스크가 없는 일부터 시작하시면서 기초 체력부터 키우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큰 리스크도 감당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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