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울진 스토리텔링 문화공모전 수상작 -최우수상 '변방을 위하여'<3>

삽화 김진영 명덕창조의아침 원장
삽화 김진영 명덕창조의아침 원장

최우수상-단편소설 '변방을 위하여' 김준현

니모리는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것을 주는 이유가 뭡니까?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 입니까?"

"저는 다른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거벌모라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랍니다. 왕실에서 누가 도사(道使)로 오던지 거벌모라는 고통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는 옆에 있는 누이와 더불어 종종 거벌모라를 들렸습니다. 아름다운 이곳에서 백성들이 행복해 하는 것 그 뿐입니다. 부디 뜻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곰곰이 듣고 있던 니모리는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내가 이야은성을 함락시키더라도, 서라벌에서는 군사를 보내지 않을 것 입니까?"

남자는 뜸을 들이다가 이야기 하였다.

"아니요, 지금의 매금왕은 반드시 군사를 보낼 것입니다. 그것을 거스르지는 못합니다. 몇 천이 갈지 몇 만이 갈 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숫자든 그것을 막아 내야하는 것은 온전히 당신들 몫일 것입니다."

니모리는 이 정도로 왕실의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 거벌모라의 지도, 인구까지 훤히 알고 있는 이 남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유를 말해주었으나 아직까지도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은 웃음 속에서 빛나고 있었으나 속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여자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둘은 밖으로 나갔다. 니모리는 서둘러 뒤따라 나갔다. 문을 열자 내리쬐는 태양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햇볕 사이로 두 사람이 멀어져 가는 것을 보았다.

며칠 후 니모리는 백성들을 모아 이야은성으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 주변 산세는 험악하고 길이 좁았다. 하지만 의문의 남자가 준 지도를 보고 쉽게 성의 샛길로 도달할 수 있었다. 물품을 조달하는 길을 차단하고 성 밖에서 익사와 어근즉리에게 명하여 짚불을 만들어 던지게 했다. 불로 인해 성안이 혼란해진 사이 나이리, 나등리에게 명하여 날쌘 병사들을 샛길로 들어가게 했다. 병사들은 샛길로 들어가 성문을 열었다. 성문이 쉽게 열리자 성은 쉽게 함락 되었다. 성안으로 들어갔을 땐 이미 도사(道使)와 관리들은 도망을 간 뒤였다. 니모리는 성의 중심인 관아로 들어가 백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목청을 높여 말을 시작 했다.

"우리는 언제나 변방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다. 지배하는 나라가 계속 바뀌는 탓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해서 그런 취급을 받았다는 말인가?"

"우리는 그런 적이 없소!"

횃불을 들고 있는 백성들이 울분에 찬 듯 목소리를 높여 니모리의 말에 동조 하였다.

니모리는 동조하는 백성들에 감정이 벅차올라 피를 토하듯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언제나 배불리 먹고 살아갈 것만 생각했다. 양국이 멋대로 전쟁을 하고 땅을 그어 영토를 정한 게 아닌가. 이놈의 나라든 저놈의 나라든 우리를 노인(奴人) 취급만 하니 어떻게 살겠는가? 뒤엎어 보자! 우리만의 태평성대를 만들자!"

"옳소! 옳소!"

백성들 몇몇은 니모리의 말에 눈물을 훔쳤다. 힘겹게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서글픔이면서 감동의 눈물이었다. 이후 니모리는 각 촌락에서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쌀과 곡식, 고기들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몇 해 동안 굶주렸던 백성들은 이 날 밤만은 아무 걱정 없이 배불리 먹었다.

-불 타는 물길

거벌모라가 반란을 일으킨 사실이 신라 왕실에 빠르게 전달되었다. 매금왕은 진노(震怒) 하였다. 당장 군대를 보내야 하나, 같은 해 백제의 왕, 명농(明襛)이 즉위 하였다. 그는 이전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일에 있어서 잘 결단 한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논의하고자 시급히 6부 회의를 소집한다.

"거벌모라인들을 내 친히 사랑하였다.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노인(奴人)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거늘 오히려 반란을 도모하였다. 은혜도 모르는 것들이 아닌가! 신속히 군대를 보내고자 하는데, 백제의 새 왕이 즉위하였다. 그는 전략과 병법에 능하고 외교를 잘하는 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회의를 소집하였다."

갈문왕은 헛기침 몇 번을 하고 나아가 대답하였다.

"지극히 현명한 말씀이십니다. 매금왕이시여. 하해(河海)와 같은 왕의 공덕을 무시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황급히 군대를 보내야 합니다. 신이 듣기로는 새로 즉위한 백제의 왕은 도읍을 사비로 천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도읍을 천도 하느라 바쁜 시기에 저희를 공격할 여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속히 많은 병력을 보내시어 거벌모라를 빠르게 진압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사료됩니다."

뒤이어 다른 6부의 신하들도 같은 의견을 내었다. 곰곰이 생각 하던 매금왕은 갈문왕과 신하의 뜻을 이어 대군을 거벌모라에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사부지는 각 6부에 속한 군사들을 차출하여 속히 거벌모라를 진압토록 하여라."

"분부 받들겠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사부지 갈문왕은 모든 것을 순조롭게 풀어 나갔다. 각부에 속한 귀족들을 비밀리에 만나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 하였다. 자신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귀족인 한기부, 습비부는 쉽게 갈문왕의 계획에 동참하였다.

그리하여 본인과 반란에 동참하는 사탁부, 한기부, 습비부의 군사는 서라벌에 두게 하였다. 매금왕의 지지 기반인 탁부, 본파부, 잠탁부에서 주로 병사를 차출하여 거벌모라를 정벌할 군대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갈문왕은 마지막 남은 일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갈문왕은 자신의 처소에 앉아서 눈을 감아 다가올 미래를 상상했다. 지금의 매금왕을 폐위 시킨다. 매금왕이 강력히 추진하려 했던 불교의 공인을 막는다. 일찍이 사랑하였던 자신의 누이 어사추여랑을 자신의 왕비로 맞이한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중 몰려오는 졸음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자연스레 잠이 들려고 하는 사이 밖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냐?"

문이 갑작스럽게 열렸다. 수십 명의 군사들이 들어와 자신의 주변을 감쌌다. 갈문왕은 당황하지 않은 척 몸을 바로 하였으나, 흔들리는 동공은 숨길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려 입술을 깨물었다. 그 바람에 입술에서는 약간의 피가 났다. 열린 문에서는 매금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문을 걸어 들어온 순간부터 두 눈의 시선을 자신의 얼굴에 박고 있었다. 목표를 포착하면 놓은 적이 없는 독수리의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 독수리는 울고 있었다. 이전에 본 적 없던 슬프면서 강인한 형의 눈빛이었다. 갈문왕은 형의 동공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건 죽음이었다.

13) 명농(明襛)은 백제 성왕(聖王)의 이름이다. 523년에 즉위하였다. 지혜와 식견이 뛰어났으며 일을 잘 결단하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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