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대론 안된다" 대구 코로나 방역정책 대전환, 어떻게?

'코로나19' 입원대기 확진자 1천600여명…①치료 가능한 격리시설 준비
②고위험군 확진과 동시 입원 결정 ③시민사회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1일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인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나온 병동 근무 의료진이 탈의실로 들어가던 중 장갑 낀 손을 들어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대구지역 확진자 수가 2천500여 명을 넘어선 가운데 의료진들은 피로 누적과 진료 도중 감염 등 이중고를 견디며 연일 사투 중이다.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1일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인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나온 병동 근무 의료진이 탈의실로 들어가던 중 장갑 낀 손을 들어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대구지역 확진자 수가 2천500여 명을 넘어선 가운데 의료진들은 피로 누적과 진료 도중 감염 등 이중고를 견디며 연일 사투 중이다.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달 22일 대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돌파하고, 다음날 302명을 기록할 때까지 확진자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질지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불과 일주일만에 2천명, 이젠 3천명대로 급증했고, 앞으로도 몇곱절 늘어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대구에 정세균 국무총리가 상주하고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도 내려와 있지만, 폭증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지지부진해 시민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미 둑이 터져버린 상황에서 확진자 규모에 맞춰 쫒아가는 방식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역의 의료계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사회 확산을 인정하면서 확진자 규모를 지금보다 더 넓게 잡아 대처하는 플랜 B, C, D를 준비하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상황별 '대응 카드'를 솔직히 알려야 지금의 '코로나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병상 확보 위한 발상 전환, 별도 격리시설 준비를

1일 대구시 발표(오전 9시 기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중에서 입원 치료를 못하고 집에서 대기 중인 환자가 1천662명에 이른다. 확진자 수에 비례해 대기 환자 수가 매일 늘어나는 추세다. 병실 확보가 여의치 않아 이들을 다 수용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앞서 대구에서 자가격리 상태에서 증상이 악화돼 숨진 경우가 나오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 검사를 기다리다가 사망해 사후 확진을 받은 사례도 있어 이를 지켜보는 지역민들의 공포감을 더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29일 브리핑을 통해 "이대로는 안 된다. 현실에 맞는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 지역 의료계와 현장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정 총리도 "앞으로 2천200개 병상 확보를 목표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앞으로 대구의 확진자 증가 폭을 예상한다면 어림없는 규모다.

지금부터라도 대구 확진자를 6천명 규모로 잡고 수용 계획을 짜야 한다. 지역의 병상 자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고, 인근 지역 시도까지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된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별도의 격리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병원이 아닌 제 3의 시설에서 확진자를 모을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혁신도시에 있는 중앙교육연수원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한 두 곳의 격리시설뿐 아니라 실내체육관, 엑스코 등 대규모 수용 공간 여러 곳을 염두에 둬야 한다.

김성호 영남대병원장은 "경증 확진자 중에서 자가격리 형편이 어렵고 본인이 원한다면 연수원과 같은 독립된 시설에 모아 교차감염을 막아야 한다"며 "이곳에 의료인력 10~30명을 상주시켜 밀접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치료를 하고, 상황이 악화하면 큰 병원으로 옮기는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확진 단계에서 환자 분류, 입원 결정 바로하자

지난달 27일 입원을 기다리다 자가격리 상태에서 숨진 13번째 대구 사망자를 놓친 것은 뼈아픈 실수다.

코로나19 확진자 중 80%가량이 증상이 경미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병력이 있는 기저질환자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당장은 증상이 약해 보여도 기저질환자는 갑자기 상태가 급속 악화하는 가능성이 높다.

13번째 환자는 75살 고령이었고 신장이식을 받은 적 있었지만, 이틀동안 병상을 구하지 못했다. 또 60대 여성인 14번째 사망자는 자가격리 중이었지만 서구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지 못했고, 이틀 뒤 증상이 악화돼 대구의료원에 도착했지만 숨졌다.

지금처럼 기준없이 환자를 집에서 대기시키는 상황에선 추가 희생자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장에선 감염병 경보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했음에도 중증도 분류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암 치료를 했거나 심장 및 호흡기·투석 환자, 고혈압, 당뇨 등 지병을 앓거나 고령자 등 '고위험군'은 코로나 확진을 받으면 증상의 경중을 떠나 최우선 입원 치료 대상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장은 "확진 판정을 받으면 무조건 입원 치료를 하도록 하는 현재의 지침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며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확진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고 입원 우선순위를 정한 뒤 위급한 순서대로 먼저 입원시키고, 입원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사회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극복하자

대구는 광범위한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된 측면에서 감염원을 찾는 차단 중심에서 확산을 최소화하는 '완화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의료계에서는 환자가 1천명 단위로 늘어나도 사망률은 절대로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는다는게 공통된 견해다.

대구시의사회 관계자는 "기저질환이 없는 대부분의 일반인은 독감처럼 앓고 지나갈 수 있어 과도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며 "다만 요양병원, 요양원, 정신병원과 같은 폐쇄병동 등 고령자 취약 지역의 집단 감염은 치명률을 높일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원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나오면서 시민들이 동요, 혼란에 빠지자 솔직하게 한계를 인정한 싱가포르의 대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는 어렵다'고 숨김없이 말하고, "의료기관은 취약 환자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바꾸겠다"고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시민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자연스럽다"고 공감하면서 "더 큰 난관은 사회가 분열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이라고 다독였다.

앞서 우리나라 정부의 근거없는 낙관론과 모호한 대처 메시지로 국민 불안감을 가중시킨 행태와는 상반된 '리스크 관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방역당국은 이달 초가 이번 코로나19 유행에서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이달 초까지 개인 위생수칙 준수 및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실천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정과 직장, 병원, 종교단체 등지에서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사람들이 서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발열, 기침 등 경미한 의심증상이 있을 땐 먼저 가족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고, 곧바로 병원을 찾기보다 3~4일 경과를 지켜보고 검사를 받도록 한다.

감염병 유행시기엔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기에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보다는 확산을 지연시키는 행동 수칙을 실천하는 시민의식이 더욱 중요해졌다.

송정흡 칠곡경북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확진자 추세로 보면 다음 주까지 전국적으로 1만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3월 중순까지 접촉의 고리를 끊어야 유행의 진폭을 줄일 수 있다"며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