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세간에 자주 회자되는 말들이 그 사회의 거울이자 현실을 대변한다고 말들 한다.
오래 된 친구의 배신, 믿었던 동료의 험담, 상사가 뒤통수를 친 얘기 등은 SNS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술자리 단골안주이다. 또, 싸게 싼 줄 알았던 휴대폰이 알고 보니 노예계약이었고, 애국심마케팅으로 구입한 상품이 수출용보다 내수용 가격이 비싼 걸 알게 되면 여간 분한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를 '호구잡혔다'고 말한다. 요즘 '호구'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그 만큼 현실세계에서 스스로 호구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는 뜻이다.
"이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으면 네가 바로 호구다"라는 모 드라마 대사와 "세 번 참으면 호구 된다"고 말한 개그맨 박명수의 멘트는 명언이 되어 특히 젊은 층에 큰 호응을 받았다.
흔히 사회생활 성공요인 중 하나로 인맥을 손꼽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진심으로 베푼 '호의'가 '호구'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때 그 참담함은 말할 수 없다. '호구'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계산 빠른 사람에게 당하기를 반복하며 막상 '호구'가 되면 '속앓이'하며 자책한다.
요즘 시대 직장인들은 업무보다 인간관계로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곤 한다.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직장인의 기본자세지만 주위 사람들이 얕은 수를 쓰며 승승장구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혼자만 정직하게 일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의 희생이 자신의 손해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며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계산적이고 약삭빠른 인간으로 변해간다. 그 결과 아무도 호의를 베풀 지 않게 되어 '공유지의 비극'처럼 개인의 사리사욕은 극대화되고 경제학자 그레샴이 말한 것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여 사회나 조직은 결국 파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호구 잡히는 사회'가 횡행할수록 모사꾼들이 득세한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더 많은 호구들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가 더 간절하게 느껴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며 토마스 풀러가 정의한 것처럼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를 얻기란 쉽지 않다. 경쟁적 사회환경, 이기주의, 결과지상주의가 팽배한 현실사회에서 의리니, 우정이니, 정의니, 하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기는 어렵다.
국제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우방국가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과감하게 국가 간의 우정을 내팽겨치며 배신을 밥 먹듯 한다. 나라 없이 떠도는 세계 최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나 수많은 나라들로부터 외교 단절을 당한 대만의 예를 보면 국제관계의 냉정한 현실을 알 수 있다.
역경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가르쳐 준다는 말이 있다. 최근 '코로나19' 전염병은 국내외적으로 큰 혼란을 일으키고 큰 희생을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를 알게 해줬다.

피해가 극심했던 대구를 도와 달라는 호소문은 전국의 의료진들을 대구로 몰려오게 만들었고 대구와 어떤 인연도 없는 스타들의 기부 행렬은 끝이 없었다. 14년만에 69억원의 빚을 최근에서야 겨우 갚은 방송인 이상민 씨의 기부와 대구에 직접 와서 트럭을 타고 마스크를 대구시민에게 나눠준 배우 김보성의 의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또, 충남 서산의 80대 할아버지가 보낸 98만6990원과 세뱃돈을 모아 기부한 광주 학생들의 100만원은 결혼패물까지 팔며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1907년, 그 당시의 아녀자들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 '대구경북 힘내라'라는 SNS 해시태그는 못 달더라도 지역혐오의 망언을 쏟아낸 일부 몰지각한 지성인들과 수준미달의 정치인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심케 했다. 또, 마스크 한 장 못 구해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5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진정한 친구란 어떤 것일까?
학연, 지연, 혈연이 없어도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프고, 너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공감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관계는 제갈량의 말처럼 송백(松柏)과 같아서, 따뜻하다고 하여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고 춥다고 하여 잎을 갈지 않는다. 사계절을 거쳐도 쇠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더욱 단단해진다.
흔히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의 기본은 '신뢰'라고 말한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신뢰를 민주주의 작동의 가장 큰 원동력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이라고 했으며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이며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한다'고 말했다. 즉 신뢰 없는 국가는 선진국이 될 수도 없고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사회자본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다.
호의를 베푼 자를 '호구'로 만들지 말고 어려울 때 도와 준 친구의 뒤통수 치지 말자.
역설적으로 착한 호구들이 많아지고 출세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고 국민들도 행복할 수 있다.
잊지 말자! 어려울 때 누가 친구였고 누가 호구 잡았는지를….
이상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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