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위협은 세균과 바이러스다. 중세 유럽 등지를 휩쓴 흑사병으로 최소 7천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라시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16세기 신대륙에 도착한 백인 보균자들에 의해 퍼진 천연두, 장티푸스 등으로 인해 중·남미 원주민은 인구의 90%를 잃었다. 1919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도 5천만~1억 명의 희생자를 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사자 4천만 명을 넘어서는 수치다.
근대화 이후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각각 200만, 100만 명 사망자를 낸 아시아 독감(1957년)과 홍콩 독감(1968년)이 있었지만 흑사병이나 천연두, 스페인 독감처럼 단기간에 파괴적 재앙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없었다. 천연두의 경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수백만 명씩의 희생자를 낸 무서운 전염병이었으나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1980년 공식 박멸이 선언됐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처음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은 매번 인류를 긴장시킨다. 새로운 염기서열로 무장하고 수시로 변이를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들은 면역력 준비가 안 된 인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사실 치사율 면에서 코로나19는 '온건파'(?) 바이러스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의 치사율은 0.5% 수준이다. 치사율이 사스(SARS·10%), 메르스(MERS·20%), 조류독감(H5N1·60%), 자이르 에볼라 바이러스(80~90%)보다 매우 낮다.
치사율은 낮지만 코로나19 공포감은 여느 바이러스보다 크게 다가온다.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겨서 안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바이러스가 가진 '낮은 치사율' 특성 때문이다. 대개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높다. 코로나19가 딱 그 격이다. 감염자가 많이 발생함으로써 사망자 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역학구조다. 사스와 메르스가 세계적으로 각각 1천 명 미만의 희생자를 낸 반면, 치사율이 낮은 코로나19는 대유행 초입 단계인 데도 벌써 3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신종 감염병의 위험에 세계 각국이 총력을 다해 대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지금껏 상대하지 못했던 까다로운 바이러스 종이다. 게다가 인류는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코로나19 포비아(공포증)가 지속될 것 같다. 미국의 호러작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코로나19 공포가 그렇다. 인류는 결국 코로나19를 이겨내겠지만 문제는 경제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감으로 사람들이 너나없이 '사회적 거리' 유지에 나서면서 사회 시스템이 거의 멈춰 섰다. 코로나19 피해는 소상공인, 사회취약계층, 기저질환자, 노약자들에게 더 많이 가고 있다.
과잉스럽다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응하되 지나친 포비아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코로나19의 세계 대유행은 막을 수 없으며 이 바이러스가 늘 우리 곁에 남아서 폐렴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고유종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일단은 이번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는 게 급선무이다. 아울러 우리는 다음에 올지 모를 더 높은 치사율과 전파력의 바이러스에 대한 국가사회적 대응력을 길러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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