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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의 기록여행] 절도‧강도보다 큰 죄 '매점매석'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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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내용은 8‧15 전 김성재가 생필품으로 배급받은 광목 등을 작년 11월, 12월 소매상에 배급치 않고 자유처분으로 폭리의 일부인 138만7천원 상당 무단 횡령하였다는 것~.'(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8월 29일 자)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찰나에도 예외는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무리들이었다. 이름하여 모리배로 불렸다. 남선경제신문의 기사 속에 등장하는 김성재도 꽤나 악명 높았던 모리배였다.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그는 생필품으로 배급받은 광목 3천여 필을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매점매석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15만원을 선고받았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8월 29일 자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8월 29일 자

'해방의 선물은 기근'이란 말이 떠돌았고 주민들은 이내 체감했다. 식량난과 경제적 궁핍으로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버거웠다. 모리배들은 이런 주민들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레 돈벌이의 기회로 여겼다. 물자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악용해 사재기나 빼돌리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쌀이나 의료품 같은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매점매석해 폭리를 취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포도주나 심지어 마른 명태 등 돈이 된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창고로 거둬들였다.

주민들이 써야 하는 생필품은 모리배 창고 속에서 잠잔다는 말이 유행했다. 대구와 부산에서 적발된 창고 속의 생필품이 경상도의 1년 소비량에 해당한다는 발표가 있을 정도였다. 일상을 피폐하게 만든 이들 모리배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당국은 들끓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검찰은 개인에게 해를 끼친 강도나 절도 범죄보다 모든 민중을 상대로 독을 퍼뜨린 폭리행위의 죄가 더 무겁다고 단죄 의지를 밝혔다. 그 뒤 모리배들이 받은 처벌은 거의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말이다.

도대체 폭리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당국이 밝힌 폭리는 소매상이 생산비의 3할 이상을 초과해 물건값을 받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1천원에 만든 물건을 1천300원 이상으로 소비자에게 팔면 폭리에 해당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폭리라고 말하기도 무안할 지경이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이용해 마스크를 기존 가격보다 3, 4배 부풀려 파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시절 매점매석은 폭리 여부로 판가름했다. 월평균 판매량의 1.5배 이상, 닷새 넘게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는 마스크 업자를 처벌하기로 했다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첫머리에 인용한 기사에서 다만 품목을 바꿔봤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보시라. 70여 년이 흘렀지만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사건의 내용은 8‧15 전 김성재가 생필품으로 배급받은 마스크 등을 작년 11월, 12월 소매상에 배급치 않고 자유처분으로 폭리의 일부인 138만7천원 상당 무단 횡령하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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