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모든 것을 걸고,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을 담은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박경리, 프리다 칼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에밀리 브론테, 수전 손택…. 이들은 겉으로 보면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린 여성이었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억압과 여성의 글은 허영에 들뜬 취미에 불과하다는 무시가 팽배한 세상에 맞섰다. 이들이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쓴 것은 '가장 나다운 나'로 살기 위해서였다.
뒤라스나 버지니아 울프를 두고 '여자가 글을 쓰면 미치거나 불행해진다'는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은이는 이런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뒤라스는 글로 생활의 기반을 닦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 빛나는 여자였고, 울프의 죽음은 전쟁의 참혹함에 짓눌려 더는 작가로서 쓸 수 없게 되자 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선택'이었다.
박경리는 남성 작가 중심으로 살롱처럼 운영되던 한국 기성 문단에 잘 섞이지 못했다. 당시 여성들의 경험을 다룬 문학은 '사소설'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박경리는 개인이 겪은 모진 고통을 인류 보편의 문학으로 남긴 대단한 작가였다.
지은이는 세간의 평가에 기대기보다는 여성 작가들이 직접 남긴 글과 말들을 모아 저마다 스스로의 삶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했는지, 그 실패와 성공의 기록을 썼다. 이 책에서 그동안 오해했거나 왜곡된 형태로 알고 있었던 이들의 삶을 바로 보게 된다.
시대가 여성에게 지운 부담은 무거웠다. 결혼, 임신, 출산, 양육, 돌봄 노동 등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것처럼 이들의 인생을 더 많이 지치고 힘들게 했다. 배우고 싶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고,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직업을 쉽게 가질 수 없었다.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내고도 남성이라면 받지 않았을 사생활에 대한 크고 작은 공격을 받았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공간과 상황이 존재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러한 경험들은 이들의 의지를 결코 꺾지 못했다.
영영 자신의 시대와 공간에서 이해받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 19세기 미국 대표 여성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은 생전 자신의 시를 거의 공개하지 않고 집 밖에도 나서지 않은 '기이한 은둔'으로 묘사되곤 했다. 지은이는 이를 수동적인 은둔이 아닌 '나의 독자는 후대에 있고 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계속 쓴다'라는 적극적인 선택의 태도로 봤다.
억압과 결핍으로 인해 남들은 가지지 못한 특별한 관점도 생겨난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가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할 당시 540명의 학생 중 여학생은 단 9명뿐이었으며, 최고의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두 아이 엄마였던 그에게 어느 변호사 사무실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여성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제도를 바꾸는 데 평생을 바칠 수 있었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은 유방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투병의 경험은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사회적 책무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한계는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계단이 되었고, 아픔은 더 멀리까지, 그리고 더 작은 것까지 보게 하는 약이 되었다. 25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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