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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뮤지컬 오케스트라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2015년 한여름, 한국 최대 뮤지컬 축제 개막 공연을 앞두고 무대 위에는 지휘를 맡은 청년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리허설을 하고 있는 가운데, 넓게 펼쳐진 잔디밭 광장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분주하다.

최근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가 전국을 뒤엎은 바람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열 감지 장치를 통과하며 입장한다. 저 넓은 들판을 관객으로 가득 메우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어느덧 시간이 다가왔다.

"대구 최초 뮤지컬 오케스트라의 오버추어를 시작으로 개막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MC의 멘트 소리에 맞춰 연주자들이 막 무대 위로 등장한다. 대기실에서 지휘자의 입장 신호를 기다리던 청년은 주머니에 있는 청심원을 두 개째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청년은 어린 시절부터 발표 공포증이 심했다. 전교회장 후보 연설문 낭독 내내 우물쭈물 고개만 떨구다 친구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고, 학생 방송반 앵커를 할 때는 생방송 도중 대본이 선풍기 바람에 날아가는 사고가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대본이 없어진 관계로 방송을 멈추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가 대대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때면 늘 청심원을 달고 살았다. 오늘은 특별히 1+1을 사두길 잘했다 싶다.

드디어 지휘자의 입장 신호가 떨어졌다. 떨리는 심장을 쓸어안고 무대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배꼽인사를 마친 청년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앞이 깜깜했다.

혼자 이 큰 무대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본인의 그릇이 턱없이 작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개막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은 청년에게는 꿈과도 같았다. 얼마 전 그 기회를 얻었을 땐 한치의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노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열정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악보를 구할 수 없어서 총보를 직접 만들어야 했고 수십 명을 수용할 연습실과 악기 대여 문제로 전전긍긍했다.

국내에도 몇 안 되는 뮤지컬 오케스트라를 제까짓게 만든다고 설쳐대다 수월한 게 하나 없음을 알게 되고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주눅도 잔뜩 들었다.

수천 명 앞에서 인사를 마친 후 서서히 연주자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깊은 심호흡을 내쉰 청년은 지휘봉을 인중 앞으로 들어 올린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마치 모이를 가져온 어미 새를 기다리듯 지휘자의 신호를 기다리며 그에 대한 믿음의 미소를 건넨다. 무대 옆에는 함께 밤새우며 준비해 온 동료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용기를 북돋는다.

그토록 꿈꿔오던 뮤지컬 오케스트라의 첫 비행이 겁쟁이 청년의 손짓에 맞춰 연주자들의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두려웠던 마음은 이내 평온함으로 바뀌고 청년의 두 팔은 마치 백조가 된 듯 우아한 기품으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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