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리안갤러리 대구 윤희 '빗물화석'전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재불조각가 윤희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재불조각가 윤희 '빗물 화석'전 전경.
윤희의 회화 작품
윤희의 회화 작품 'Projeté triptyque_2019'

재불 조각가 윤희(70)는 원추나 원형 주형에 고온에서 녹인 청동, 황동, 알루미늄 등의 금속 용액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던져 그 용액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거나 겹겹이 쌓이고 엉켜 물질 그 자체가 스스로 최종적인 형태를 이루도록 하는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는 작가이다.

이때 흘러내린 금속 용액은 마치 종잇장처럼 얇아지면서 주형 형태에 따라 원추나 원형형태를 띄게 되는데, 이렇게 만든 작업 결과물을 크기에 따라 깔때기 모양으로 겹쳐 놓으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2018년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통해 국내에 호평을 받은 윤희의 두 번째 개인전 '빗물 화석'전이 리안갤러리 대구의 2020년 첫 전시로 19일(목)부터 5월 9일(토)까지 관객과의 만남의 기회를 갖는다.

서울 전시에서 금속 물질이 작품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작가의 '의도'와 그녀의 손을 떠나 우연한 형태로의 귀결이 나타나기까지의 '기다림'이라는 상반된 관점이 작품의 속성이었다면, 이번 대구 전시는 금속 재료의 물질 자체에 내재된 다양한 특성이 어떻게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지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금속용액이 주형틀에서 흘러내리면서 생성되는 두께와 자연스러운 질감을 포함해서 서서히 식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가장자리의 프랙탈 구조는 재료 자체가 온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질을 드러내는 금속 물질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게 한다.

단단한 물성의 금속이 액체 상태에서 틀을 따라 흘러내리는 형상은 마치 빗물이 바위를 흘러내리는 모습에 비유될 수 있고, 흘러내린 빗물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을 볼 수 없지만 금속의 액체는 굳으면서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는 곧 '빗물의 시각화' 내지 '빗물의 흔적'에 대한 재현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빗물 화석'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빗물 화석' 연작은 2003년 처음 착안했으나 2017년에 비로소 한국에서 실현된 것으로 완만한 원형의 틀을 천장에 고정시킨 후 금속 용액을 던져 빗물처럼 떨어지며 응고하게 된 작품들이다.

윤희는 이런 작업을 통해 녹거나 응고되는 금속의 근본 성질을 이용해 모순된 물질의 다층적 양면성을 시각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게 하며, 더 나아가 무름과 단단함, 부드러움과 거친 표면의 질감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게다가 보기에 따라 단단한 금속 물질이 정반대인 연약하고 부드럽게 만개한 꽃잎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빗물 화석'전 작품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특히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빗물 화석' 작품들과 짝을 이루는 다른 연작인 '튀긴' 작품들은 벽에 설치함으로써 상승과 하강의 의미가 전도되거나 수직이 아닌 수평적 의미로 바뀌는 묘미도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이 같은 모순된 조형성은 자신이 개발한 검은 색 천연 안료를 이용한 회화 작업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나고 있다.

오롯이 전용 도구를 이용해 물감을 던져 만든 그녀의 회화는 안료의 농도, 던지는 힘의 세기, 직관적인 방향 선회 등 여러 요소들의 작용에 따라 우연적으로 결정된 작품으로 원심력의 역동성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국내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가가 열정을 다해 완성한 최신 조각 작품 11점과 회화작품 7점을 소개하고 있다. 문의 053)424-2203.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