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코로나의 죽음 앞에서

동진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리며 수채화 같은 색감을 느끼게 한다. 산자락도, 나무들도, 풀들도, 새들도 인고의 겨울을 감내했기에 따뜻한 봄을 맞는다. 뒷산에는 잿빛 숲속 사이로 노란 생강꽃과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난다. 봄은 이와 같이 찬란한데 코로나19로 축제들은 취소되고 발이 묶인 시민들은 불안하다. 큰 사찰들도 산문을 폐쇄하고 작은 사찰들도 모임도 법회도 취소되어 더욱 적막하다.

근대 한국 선불교의 선각자 경허(鏡虛·1849~1912) 선사는 1879년(고종 16년) 여름, 어린 시절의 스승인 계허 화상을 찾아뵙기 위해 길을 떠났다.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민가의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에게 거절당했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모두 내쫓아서 이유를 묻자 "이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해 걸리기만 하면 서 있던 사람도 죽으니 어찌 감히 손님을 받겠는가?" 콜레라에 걸려 줄초상을 당한 마을에서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한 그는 경전의 지식은 죽음 앞에서 생사(生死)를 면치 못함을 깨닫고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였다. 경허 선사는 동학사로 돌아온 뒤 공부하던 제자들을 모두 하산하게 했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단정히 앉아 화두를 참구했다. 다리를 송곳으로 찌르고 머리를 부딪쳐서 수마를 쫓았다. 그렇게 참구하기를 석 달 만에 문 밖에서 "스님들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신도의 시주만 받아 생활하다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소가 되는데 콧구멍 없는 소가 된다 하지 않소?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되지요" 하는 소리에 활연히 큰 깨달음을 얻었다.

경허는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그 기쁨을 노래했다.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온 우주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六月燕岩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일 없는 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실제로 1879년 고종 16년 일본에서 전염된 콜레라가 전국에 퍼져서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4, 5년 동안 조선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전염병은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 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여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으며 치사율은 80~90%에 달했고 2001년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 중 또 하나는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스페인 독감'이다. 지구촌을 휩쓸면서 2천500만~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우리나라는 740만 명이 감염되었고, 14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달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를 세계적 감염병이라는 '팬데믹' 선언을 했다.

이제 세계는 너와 나를 가르는 단절의 강을 넘어 하나로 연결되었다. 모든 존재는 분절되고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이다. 양보 없는 이기심으로 자신만 살려고 하면 감염병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한 형제로 생각하고 혐오하지 말고 자애로 보살펴야 한다.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치유하는 명상하기를 권하고, 업무에 지친 담당 공무원과 의료진들의 피곤함을 달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기부자들과 봉사자들의 봉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 서로를 염려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경허 선사가 죽음의 길에서 깨달음으로 성취하듯 이번 국가적 위기를 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로가 소중한 사회가 된다면 우린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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