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통령의 허풍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제국주의 일본은 중일전쟁(1937년)을 3개월, 길어도 6개월 안으로 끝낼 것으로 자신했다. 1931년 만주사변 때 확인한 중국군의 형편 없는 전투력은 그렇게 자신할 만했다. 하지만 중국군이 광활한 영토를 이용한 지구전(持久戰)으로 맞서면서 8년간이나 중국에 묶여버렸다. 이길 전망은 사라졌지만 군부는 국민에게 '이기고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그 대상은 히로히토(裕仁) 일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전(開戰)을 3개월 앞두고 히로히토가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 육군 참모총장에게 "전쟁을 끝내는 데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3개월"이란 허풍이었다. 이에 히로히토는 "중일전쟁은 1개월이면 정리할 수 있다고 했는데 4년이 된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다"고 했다. 스기야마가 "중국이 넓어서 그렇다"고 변명하자 히로히토는 "태평양은 더 넓은데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이러니 국민에게 허풍 떠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1941년 진주만 기습 이후 1943년까지 일본군은 태평양 전역(戰域)을 그럭저럭 꾸려갔다. 하지만 점령 중인 필리핀이나 마리아나 제도(諸島) 등에 대한 방위 준비는 전혀 못했다. 이후 미군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겼는지 졌는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거나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켰다.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특히 심했다. 1944년 6월 절대방위선(絶對防衛線)인 사이판에 대한 미군의 공격을 앞두고 "적이 상륙한다면 그거야 말로 예상한 것이다"라고 했다. 미군을 사이판으로 끌어들여 격멸하겠다는 허풍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 대응은 이와 똑같은 허풍의 연속이었다. 그 대열의 맨 앞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머지않아 종식된다" "전면 입국 금지의 극단적 선택 없이도 바이러스를 막고 있다"며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듯이 말했다.

이런 허풍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타임은 지난 13일 한국과 일본이 "초기의 느린 대처와 확진자 폭발적 증가로 비판받았다"면서 "한국 대통령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속된 말로 옮기면 '왜 그리 입방정을 떠느냐'쯤 되겠다. 당사자도 아닌데 기자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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