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의 배경음악 '뽕짝'이 안방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상함과 거리가 멀다 여겼던 것이 어느새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최근 종영한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 얘기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시기, 마음을 어루만지고 흥을 돋우는 노래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저리가라할 열정의 새로운 중장년층 팬덤 문화가 생겨나는 데도 한몫했다.
특히 최종 3위로 미(美)를 차지한 대구 출신 대학생 이찬원(24) 씨의 활약이 눈에 띈다. 대구경북 지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것은 물론, 전국적으로 '찬또배기' 열풍을 일으키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어릴적부터 곳곳에서 끼 분출
그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대구 토박이'. 달서구 선원초등학교와 성산중학교, 경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015년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에 입학해 현재 휴학 중이다.
그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두드러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8년, SBS TV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대구 특집편'에 출연한 것이 대표적.
트로트 신동들과 함께 등장한 이 씨는 조그마한 체구에 뿔테 돋보기안경과 2대 8 가르마로 남다른 귀여움을 뽐냈다. '대구 조영남' 답게 여행을 떠나요, 영원한 친구 등의 노래를 맛깔나게 불렀다. 특히 "트로트를 좋아해 집에서 2년쯤 부르다보니 저절로 소리가 구수하게 꺾였다. 웬만한 노래는 다 꺾을 수 있다"는 능청스러운 말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 출연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이력. 2008년 대구 중구편에 나가 성인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우수상을 차지했다.
당시 열두 살인 그의 선곡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은 '너는 내 남자'.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온 몸을 흔드는 춤사위와 구성진 창법, 범상치 않은 손짓으로 그야말로 무대를 뒤집어놓았다. 그는 그 해에 모든 전국노래자랑 도전자들이 꿈꾸는 연말 결선에도 나가 '정말 진짜로'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다시 전국노래자랑에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13년 대구 서구편. MC 송해보다 작았던 아이는 키가 훌쩍 큰 고등학생이 됐고, 업그레이드된 끼를 발산하며 '진또배기'를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그는 대학 입학과 군 제대 후 지난해 경북 상주편에 '미운 사내'로 또 도전해, 마침내 최우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본격적인 '찬또배기' 열풍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1월, 미스터트롯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신동부에 참가한 그는 첫 예선전인 100인 예심에서 진또배기를 찰떡처럼 불러 '찬또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본선 1차전(팀 미션)과 2차전(1대 1 매치), 3차전(팀 미션)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울긴 왜 울어', '잃어버린 30년', '남자다잉' 등의 노래로 때로는 발랄한, 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다양한 매력을 발산해 팬층을 쌓았다.
치열한 준결승을 거쳐 마침내 TOP 7에 이름을 올린 이 씨는 결승에서 우승 후보로 손꼽혔다. 결승전 당시 마스터 합산 점수 1위, 대국민 응원투표 점수 2위로 전체 1위를 달렸으나, 실시간 문자투표 점수에서 3위를 기록하면서 최종에서는 임영웅(진)과 영탁(선)에 이어 미로 마무리했다.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지만 '덕질'(팬덤 활동)은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모양새다. 팬들이 네이버 카페와 밴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진과 정보 등을 공유하고 있는 것. 일부 팬들은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성금 1천500여 만원을 십시일반 모아, 이 씨의 모교와 같은 재단인 영남대학교병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1만7천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팬카페 '찬원마을' 운영자는 "카페 가입자들을 바탕으로 했을 때, 연령대가 10대부터 70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활동 주축은 40~50대지만 10~30대 팬들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어떤 아이돌, 트로트 가수도 이렇게 모든 세대를 통합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개인 소속사가 없는 이찬원을 응원하고자 팬클럽 차원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홍보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하철 광고를 비롯해 미스터트롯 콘서트 응원봉과 단체티 등 굿즈도 직접 제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주부 김정미(44) 씨는 "많은 이들이 미스터트롯 덕분에 '코로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며 "뛰어난 실력은 물론이고, 대구 출신이라고 하니 더욱 정이 갔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지현(23) 씨는 "부모님이 미스터트롯 전국투어 콘서트를 예매해달라고 하셨는데 수원, 울산, 강릉 등 이미 다 매진됐더라"며 "이찬원은 귀엽고 선한 이미지의 강아지상이어서 또래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했다.

◆집에서는 애교 많은 맏이
이렇다보니 이 씨의 유튜브 등 SNS 활동, 대학생활 등 모든 것이 팬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팬들은 이 씨의 방송 촬영, 방영 스케줄까지 줄줄 꿰고 있을 정도.
특히 이 씨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달서구 이곡동의 막창가게는 팬들 사이에서 이 씨 외갓댁이 위치한 경북 상주 화동면과 함께 '성지순례' 코스로 꼽힌다. 테이블이 8개 남짓한 가게 앞은 오후 4시쯤부터 길게 줄이 늘어선다. 가게 안팎은 팬들이 보낸 화환과 현수막이 가득하다.

아버지 이형근 씨는 "요즘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정신 없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일반인이 이런 관심을 누리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찬원이는 2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집에서는 애교 넘치고 사근사근한 성격의 아들"이라며 "잘 알려진대로 어릴 때부터 끼가 많았는데, 사실 애 엄마는 무대에 서는걸 많이 반대했었다. 아무래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고, 잘 안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아버지 이 씨는 평소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 '흥(興) 부자'. 미스터트롯 출전을 고민하던 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도 그였다. 이찬원 씨는 결승전에서 선곡을 고민하다 아버지가 추천한 나훈아의 '18세 순이'를 불러 높은 점수를 얻기도 했다.
아버지 이 씨는 "결승전이 끝나고 찬원이와 통화하면서 수고했다, 감사하다는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무척 장하고, 대견하다"며 "무엇보다 팬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3위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이찬원 씨는 재학 중인 영남대에서도 이미 유명 인사다. 지난 17일에는 서길수 영남대 총장이 직접 연락해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영남대와 영남대병원은 이 씨를 명예 홍보대사로도 임명할 예정이다.
허창덕 영남대 대외협력처장(사회학과 교수)은 "2018~2019년 영남대 총동문회가 주최한 팔공산 등반대회, 지난해 재경총동창회가 주관한 천마 취업동문 환영회 등에서 뛰어난 노래실력을 선보인 바 있다. 단과대학 행사에서 사회도 도맡아하는 등 대학 내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며 "이번에도 영남대 전 동문들이 합심해 문자 투표와 홍보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그야말로 학교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벅찬 사랑에 감사, 진심 다해 노래 하고파"
이 씨의 주변인과 팬들이 꼽는 그의 매력은 뛰어난 실력과 밝고 긍정적인 성격, 친화력, 깊은 배려심 등이다. 김도근(24) 씨는 "고등학생 때 찬원이를 대구고등학생대표자연합에서 만나서 알고 지냈다. 쾌활한 성격에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서 잘 어울리고, 끼가 다분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미스터트롯 최종 수상 이후 소감을 전하는 자리에서도 이 씨는 고향인 대구 지역민들에게 위로를 잊지 않았다. 이어, 쉽지 않았던 생방송을 잘 마무리한 MC 김성주에게도 시청자들의 박수를 유도해 배려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찬원 씨는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를 통해 매일신문에 직접 "방송 이후에도 벅찰만큼 많은 사랑을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했다.
"대구경북 고향분들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저의 노래를 듣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진심을 다해 노래해서,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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