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석재현의 사진,삶을 그리다] 땅이 사라진다

이대성,미래의 고고학 시리즈 중에서
이대성,미래의 고고학 시리즈 중에서

양들이 풀을 뜯어 먹던 초원이 점점 사막처럼 변해간다. 드넓은 풀밭이 있던 곳에 바닷물이 차오른다.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공장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그저 한평생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환경난민'이다. 자연의 분노가 환경을 훼손하지 않던 순한 이들에게 재앙을 선사한 것이다.

몽골의 겨울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영하 40, 50℃란 엄청난 숫자들이 일상처럼 기록되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몽골은 겨울철 기온이 오르면서 '눈'이 사라졌다. 예전 같으면 눈으로 뒤덮여 있어야 할 초원에는 강한 바람만 불어온다. 사실 유목민들에게 '눈'은 삶의 전부다. 봄이면 녹아 땅을 적시고 가축들이 먹을 풀을 키우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이 사라지니 물도, 풀도 존재할 수가 없고, 먹을 것이 없으니 가축이 죽고, 가축을 키울 수 없으니 유목민들은 더는 유목민이 될 수 없다. 초원에서 유유자적하던 그들은 지금 살던 곳을 떠나 도시 인근 쓰레기장에서 넝마주이로 전락하고 있다. 재앙이다.

급속한 사막화로 몽골은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강과 호수, 연못과 개울이 사라졌고, 유목민들은 설 땅을 잃었다. 삶의 터를 빼앗긴 환경난민들이 벌써 수십만 명에 이르는 현실, 사진가 이대성은 그런 몽골 전통 유목민들의 모습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업 속에서 몽골의 사막은 박물관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기후가 변하기 전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벽판을 설치하고, 그 구조물은 사막화가 진행되는 현재의 공간과 어우러진다. 보존해야 할 과거와 파괴되고 있는 현재, '보존'과 '파괴'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묘한 역설적 아이디어가 이대성의 작업 '미래의 고고학'을 채우고 있다.

파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진가 이대성은 해외 유수 공모전에서 연달아 수상하며 한국 사진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작가다. 스물네 살, 한국에서 겪은 IMF는 그의 작업의 시발점이 됐다.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우리는 왜 망하는 거지?'라는 의문은 당시 유행했던 '세계화'란 말에 집중케 했다. 왠지 멋져 보이던 그 말이 왜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촘촘한 연결 고리, 그 정체를 찾다 보니 세상을 받치고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마치 생태계의 피라미드처럼 맨 아랫자리, 가장 낮은 밑바닥의 이야기를 담기로 말이다. 그렇게 그는 세계화와 문명 파괴의 최대 희생자들이 있는 비서구권 오지로 뛰어들었다.

이대성 사라져가는 섬의 해변에서 시리즈 중에서
이대성 사라져가는 섬의 해변에서 시리즈 중에서

몽골의 급속한 사막화를 담은 '미래의 고고학' 외에도 해수면 상승으로 점점 사라지는 인도 고라마라섬을 담은 이대성의 작업, '사라져가는 섬의 해변에서' 역시, 지구온난화의 폐해를 담은 중요한 시대의 기록이다. 환경 변화 때문에 사라져 가는 자연의 소중함과 사람들의 삶을 담은 이대성의 작업들은 여기 좀 봐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더 생각의 여백이 길게 남는다. 자연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간신히 발을 딛고 올라설 땅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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