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손소독제 등 의료상품
범세계적으로 품귀 현상 빚어
매점매석 처벌은 일시적 효과
정부와 시장의 상호협조 필요
대재난이 일어나면 이를 수습하기 위해 국가의 강제력이 강화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대형 화재, 전쟁,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대역병이 발생하면 정부의 지도력 행사가 불가피하다. 정부 개입이 효과적이 되자면 민간 부문, 특히 시장경제와의 긴밀한 상호 협조가 필요하다. 재난 정책은 소비자의 선택권, 그리고 기업의 경쟁 및 이윤 추구와 상충되지 않아야 한다. 과거의 정부 개입 사례를 보면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1973~1974년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금수 조치로 1차 오일쇼크, 그리고 1978~1979년에는 이란의 종교혁명으로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여 휘발유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었다. 두 번의 오일쇼크 때마다 미국은 휘발유 가격 통제를 실시하였다. 지정 수준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서민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주유소마다 늘어선 장사진이었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매진이 되기 일쑤였다.
통제가 없었다면 가격이 올랐을 것이고 소비자는 비싼 휘발유 사용을 가능한 한 절제했을 터이다. 생산자는 호전된 수익 기회를 이용하여 생산 확충에 진력하였을 것이다. 이에 따른 소비 감소와 공급 증가는 가격 인하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일본과 독일은 오일 쇼크 기간에 휘발유 가격을 통제하지 않았으며 휘발유 파동도 없었다고 한다. 일시적인 유가 급등은 있었지만 점차 가격 안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나타난 마스크, 손소독제 등 의료상품의 품귀 현상은 범세계적이다. 아마존(Amazon)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 가보면 가격 상승이 엄청날 뿐 아니라 아예 품절된 경우도 많다. 한국 정부는 마스크를 1천500원에 일괄 공급하겠다며 약국, 우체국 등에서 1인당 일주일에 마스크 2장만 살 수 있는 마스크 배급제를 시행하고,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는 행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한다.
1천500원의 마스크 (5부제) 배급제로 나타난 것은 휘발유 가격 통제 때와 마찬가지로 차례를 기다려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2020년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8천590원이다. 1시간 기다려서 요행히 마스크 2개를 구매했더라도 실제 비용은 3천원이 아닌 3,000+8,590=11,590원, 즉 개당 약 6천원이 된다. 그래도 공적 마스크를 사려는 것은 시중 가격보다 값이 월등히 싸고, 또 정부의 독점으로 인해 민간 구매의 기회가 막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저렴한 공적 마스크 가격은 구매자의 수요 증대, 생산자의 공급 감소를 일으켜 물자 부족을 악화시킨다.
매점매석을 처벌하는 것도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물자를 대량 매집하는 목적은 장래에 물자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하면 다시 팔아 큰 이윤을 챙기자는 것이다. 탐욕적 행위이지만 국가 경제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격 급등의 의미는 귀한 상품이니 아껴 쓰라는 것이다. 예견되는 물자 부족에도 불구하고 매점을 금지하면 임시로 가격 상승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되는 소비로 비축 물량이 고갈되므로, 물자 부족 대란이 닥쳤을 때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사려 해도 물건이 없는 속수무책 사태가 온다. 재난 상황에는 매점매석이 오히려 사회적 선이 되는 역설이 성립한다. 매점꾼들이 비축해 둔 물자가 있으므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이를 아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 시기의 가격 급등, 매점매석은 소비자에게는 절약을 고취하고, 생산자에게는 공급 증대를 유도함으로써 물자 부족 사태를 해결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이다. 정부의 가격 통제, 매점매석 금지가 아니다. 물론 극빈자 등 취약계층은 도움을 필요로 하므로 정부의 역할은 이들에 대한 선별적 지원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미국도 바야흐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뉴욕주의 확진자 수가 (3월 21일 현재) 지난주의 1천 명에서 1만 명 이상으로 10배가 늘었고 주정부는 식품 구입 등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금지하고 있다. 식품점에는 화장지, 손소독제 등이 품절이다. 사재기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다행히 매점매석 처벌이나 5부제 배급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불황에 대처해서 무차별적으로 1인당 1천달러를 지급하자는 등 비생산적인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회오리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손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시민들의 전염 예방 행위와 의료인의 직업 정신으로 환자와 사망자가 줄고, 창의적인 과학자와 혁신 기업의 아이디어에 의해 코로나바이러스의 효과적 대처법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까지 국가 통제를 가능한 한 배격하고, 정부와 시장(市場)이 협력과 조화를 이루어 위기를 극복하길 희망한다.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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