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리두기? 노인들은 "코로나 보다 더 무서워"

사회활동 많지 않아 집안 생활 외로움 호소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 싫어"

23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을 찾은 노인들이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거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주현 기자
23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을 찾은 노인들이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거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주현 기자

23일 오전 10시 30분쯤 찾은 대구 달성공원. 마스크를 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코로나19를 의식한 듯 다른 벤치에 앉아 있던 이들도 어느새 옆자리로 합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잊은채 딱 붙어 앉아 '수다'를 이어갔다.

김능통(76) 씨는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한동안 집 안에서만 지내면서 말동무 없는 쓸쓸한 시간을 보냈던 터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너무 반갑게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까이 붙었다"고 했다.

같은 날 대구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엔 노인들의 장기판이 한창이었다. 공원 관리사무소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장기말과 판을 없앴지만 노인들이 손수 장비까지 마련해와 다시 장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장기를 구경하던 박동우(75) 씨는 "마스크도 쓰고 손소독도 철저히 하면서 악수를 하지도 않지만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은 역시 어렵다"며 "구경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함께 부대껴 놀고 있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사람이 많이 그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추가 전파를 막고자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회활동이 많지 않아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에게 좀체 먹혀들지 않고 있다.

한동안은 억지로 실내 생활을 했지만 사람이 그리운 탓에 야외에 나와서라도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이 그립지만 코로나19 걱정에 공원에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만 하는 노인도 많았다. 한 노인은 "코로나19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 갈 곳도 없고 찾는 이도 없다 보니 지난 한 달은 창살없는 감옥에서 사는 것 같았다"며 "그저 공원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적적함만 달래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최재철(78) 씨는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싫었고 텔레비전만 켜면 코로나 이야기가 나와 진절머리가 났다"며 "날씨가 좋아 공원에 나와 봤더니 사람이 많아 반갑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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