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의 장자인 신문왕(?~692)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부왕의 뜻을 받들어 통일신라를 안정되게 이끌어가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먼저 신문왕은 즉위한 지 한 달 만에 김흠돌 세력이 모반을 꾀했다는 이유로 모조리 잡아들여서 주살하였다. 김흠돌은 신문왕의 장인으로서 김유신과 함께 고구려와의 전투에도 참여했던 고위 관료였다.
신문왕은 왕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김흠돌 세력을 3, 4일 만에 소탕하고 김흠돌의 역모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던 병부령 김군관마저 처형하였다. 동시에 신문왕은 김흠돌의 딸인 왕비를 출궁시키고 김흠운의 딸을 왕비(신목왕후)로 맞이하였다. 신문왕은 김흠운이 655년에 백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기 때문에 외척의 정치적 개입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신문왕은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문무왕릉비를 건립하고 대왕암 근처에 호국사찰인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였는데, 이는 신문왕이 부왕의 위업을 부각시키고 그의 태자로서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던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신문왕은 국왕을 호위하고 왕성을 지키는 시위부(侍衛府)에 하급 관리들을 임명하여 무력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신문왕은 군사조직을 개편하여, 중앙군에 신라뿐만 아니라 옛 고구려·백제·말갈·보덕국의 백성들을 참여시킨 9서당을 창설하였다. 동시에 지방행정 구역인 9주에 지방군으로서 국방과 치안을 담당한 1정을 1주마다 배치하여 10정을 완성하였다(군사적 요충지인 한산주는 2정을 주둔시킴).
신문왕은 위화부(位和府)를 정비하여 왕권 성장에 도움이 될 인재들을 선발하고 추천하였다. 아울러 국학(國學)을 설립하여 유교 경전을 통해 유교적 충효사상을 익힌 인물을 등용해서 왕권의 지지 기반으로 삼고자 하였다. 신문왕은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영토를 9주 5소경의 행정구역으로 개편하고 각각 지방관인 총관과 사신을 파견하여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더 나아가 신문왕은 토지세와 노동력과 공물을 수취할 수 있는 녹읍을 폐지하는 대신, 토지세만을 거둘 수 있는 관료전을 지급하여 진골 귀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신문왕과 관련하여 만파식적 설화가 전해지는데, 용이 나타나 신문왕에게 만파식적을 불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는 부분은 신문왕의 정치 개혁 과정이 비교적 순탄하게 전개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신문왕의 태자 이홍(理洪, 효소왕)도 등장하는데, 그가 신문왕의 왕위 계승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드러내려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신문왕이 죽자, 모후 신목태후를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들은 효소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부왕의 넋을 기리는 황복사 3층 석탑과 신문왕릉비를 건립하였다(최근 연구에 의하면,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비편이 '신문왕릉비'라는 주장을 인용함).
그러나 왕권 강화를 위해 거침없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던 신문왕은 재위 말년에 달구벌로 천도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가 진골 귀족의 반발로 끝내 좌절을 맛보았다. 신문왕은 이보다 앞서 장산성을 순행하고 서원경성을 축조하였는데, 장산성은 현재 대구와 경산의 경계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서원경성을 지었다는 것은 9주 5소경의 행정 개편이 마무리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신문왕은 달구벌로 천도할 목적으로 사전에 장산성을 방문했고, 9주 5소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달구벌 천도 계획을 추진했던 것이다.
달구벌은 낙동강·금호강·신천 등의 수륙교통지였고, 평지와 구릉성 경사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어서 경제적 생산력을 높이기에 알맞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 또한 팔공산은 5악(五嶽) 중 하나로 신라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자연물이자 국방상 자연 방어시설물이기도 하였다. 현재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위치한 송림사는 7세기 후반 무렵에 창건되었는데, 그 배경이 달구벌 천도와 관련하여 세운 사찰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찌감치 달구벌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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