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VS 베르메르(우광훈/ 민음사/ 2008)
오십에 가까운 나이가 되니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내 인생을 잘 살았을까? 나는 나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고개가 휘저어진다.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라는 책에는 진짜 삶을 동경하다 가짜 인생을 살다 간,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며 우리 고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베르메르 VS 베르메르'의 작가 우광훈은 대구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1997년 '유쾌한 바나씨의 하루'로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 '샤넬에게' 등의 작품이 있고 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또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1770호 소녀'로 당선되었고 최근 2017년 제7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은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 맨'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책은 좀 묘하다. 책의 형식이 순수 소설이면서도 20세기 미술사 현장에 있는 듯 근대 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치는 미술사 전문 책이며, 가브리엘이라는 주인공의 성장소설이면서, 마지막 비밀을 다 펼쳐놓지 않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한마디로 스펙터클한 소설이며 여러 요소의 재미를 모두 충족시켜 준다. 책의 구성에 있어서도 시대가 17세기와 20세기, 21세기를 오가고 공간도 한국,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을 오간다.
독자들이 긴장을 놓지 않고 책에 몰두하게 한다. 책의 문체와 표현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책의 시작과 끝까지 단정하게 잘 정돈된 문장들, 창의적이고 시적 표현들도 녹아 있다. 또 베르메르 작품을 위조한 반 메헤렌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고, 반 메헤렌을 가브리엘 이벤스라는 소설 주인공으로 재탄생시켜 더욱 실제 이야기 같은 느낌 속에 빠져들게 한다.
이야기는 위작과 함께 가짜 인생을 산 가브리엘의 이야기이다. 가브리엘은 진정한 화가를 꿈꾸는 가난하고 순수한 화가 지망생 소년이다. 그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파리 몽마르트에 진입하지만 데생과 고전주의 화법을 고수하고 있었기에 20세기 유행하던 초현실주의(고흐, 쇠라, 모네, 피카소 등)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실력에 비해 인기도 성공도 얻지 못한 채, 현실과의 괴리 속에 빠지게 된다.
화상 만시즈는 가브리엘에게 현재 유행하는 화풍의 유화를 그리라고 종용했고 가브리엘은 오랜 고민 끝에 변화를 시도하지만 과거의 완벽했던 데생도 무너지고 유행을 쫓던 새로운 그림은 아류작이 되어버린다. 사랑하던 요한나도 가난과 가브리엘에 지쳐 자살하고, 가브리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때 고향에서 화상인 사이먼이 유명한 화가의 가짜 그림을 그려서 팔자는 제안을 하고 가브리엘은 그리웠던 고향으로 가서 베르메르 그림을 위작하기 시작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재능을 얻은 파우스트처럼 가브리엘은 베르메르의 그림을 비슷한 화풍으로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부분을 가미하여 베르메르 작품이면서도 새로운 베르메르의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면서도 진정한 예술과 멀어지는 자신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적국인 독일 괴링에게 베르메르의 작품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을 밀매한 죄로 붙잡혀 사형에 이르게 되고 그 뒤로 절체절명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화가가 자신의 화풍을 찾지 못하고, 작가가 자신의 작가 정신을 갖지 못하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위작이 된다. 그래도 제 삶의 방향을 직시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나도 그런 길을 가고 싶다. 그리고 내 곁의 사람에게도 같이 가지고 권한다.
이은영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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