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黨의 나라, 房의 사회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우리나라 정당 이름의 내력은 점입가경이다. 시장 골목의 간판보다 재미있다. '자유' '민주' '공화' '통일' '국민' '평화' '민중'이란 용어는 이제 고전이 되었고, '나라' '누리' '우리' '미래'라는 명칭에다 '신' '새' '열린' '더불어' '대안' '비례' 등 온갖 수식어까지 난무한다. 속된 말로 장사를 제대로 못하니 애꿎은 간판만 자꾸 바꿔 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요즈음은 더 가관이다.

한마디로 자고 나면 창당이요 너도나도 정당이다.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수가 50개에 이르고, 창당준비위원회도 30개가 넘는다. '가자환경당' '국가혁명배당금당' '기본소득당' '사이버모바일국민정책당' '자유의새벽당' '결혼미래당' '조국수호당' '억울한당'…. 범여권이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해괴한 선거법이 낳은 귀결이다. 오죽하면 민주당원들마저 일부 정당들을 일러 '듣보잡 정당' '비례잡탕당'이라 흥분했겠는가.

당(黨)이 이 모양이니 방(房)도 덩달았다. 긴 세월 온돌방 문화를 보듬고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방'이란 사회적인 교유의 장이면서도 무언가 내밀한 뉘앙스를 지닌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시절 득세한 '중방' '도방' '정방' 등은 독재 권력의 음험한 심장부였다. 우리 현대 사회의 음양을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해온 가요방과 모텔방도 그랬다. 정당이 병들수록 방들도 어두워진다.

최근에 가장 악명을 떨친 방은 '박사방'이다. 유명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일명 '박사' 조주빈이 운영했던 방이다. 그는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성폭력 예방 대책에 대한 기사를 썼다. 졸업 후에는 봉사활동까지 하며 선량한 청년 행세를 했다. 그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행각이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여기서 유사한 기시감(데자뷰)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정권의 실세와 무리 중에서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당이 일그러지면 국가가 혼란의 늪에 빠지고 사회 저변에 음습한 방들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정치가이자 충절시인이었던 굴원(屈原)에게 한 어부가 건넨 충고처럼 '창랑에 물이 흐리니 발이나 씻으며'(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살아야 하는 세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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