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옛 지명 중 하나인 달구벌은 과거 삼한시대 당시 '달구벌국'으로 불렸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과연 그럴까?
원삼국시대 즉, 삼한(三韓)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인 기원 전·후∼3세기 간에는 영남 일대의 진한(辰韓) 영역에 12개의 소국이 있었다는 내용이 '삼국지'와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의 '한조'(韓條)에 기록돼 있다. '삼국지'는 3세기 후반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다. '위서 동이전'에 실려 있는 삼한과 관련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왜(倭)와 접한다. 사방 4천 리에 달한다. 한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세 종족이 있고, 진한은 옛날 진국(辰國)이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반면, 진한과 변한은 2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한시대 진한(변한 일부 포함) 영토의 소국들은 감문(甘文)국, 거칠산(居漆山)국, 골벌(骨伐)국, 다벌(多伐)국, 비지(比只)국, 사벌(沙伐)국, 실직(悉直)국, 압독(押督)국, 우시산(于尸山)국, 음즙벌(音汁伐)국, 이서(伊西)국, 조문(召文)국, 초팔(草八)국 등으로 신라의 모체인 사로(斯盧)국과 동시대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 소국들의 이름은 '삼국지'에 기록된 진한의 소국들과는 이름이 달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삼국지'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 소국 명칭들이 왜 서로 다른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삼국지'에는 진한과 변한의 소국 규모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진한과 변한의 소국 규모는 작은 경우가 600~700호이며, 규모가 큰 경우는 4천~5천 호에 달해 총가구수는 4만∼5만 호로 추정하고 있다.
이제 대구의 모체인 달구벌에 대해 알아보자.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두루 살펴봐도 달구벌국에 대한 국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원로 사학자 한 분이 '삼국사기'에서 "신라 파사 이사금 29년(108년)에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이 신라에 복속되었다"는 기록을 참고하여 이름이 유사한 다벌(多伐)국을 달구벌(達句伐)국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달구벌국의 유래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과연 다벌국과 달구벌국을 동일 국가로 볼 수 있느냐이다. 필자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신라시대에는 지금의 두산동, 파동, 대명동, 가창면 일대에 해당하는 위화군(喟火郡, 수창군) 아래 4개의 영현을 두고 있었다. 4개의 영현은 달성을 중심으로 하는 달구화현(達句火縣, 대구현), 팔달동과 칠곡 일대의 팔리현(八里縣), 다사읍·하빈면 일대의 다사지현(多斯只縣, 하빈현), 화원읍 설화동·명곡동 일대의 설화현(舌火縣, 화원현) 등이다. 즉, 위화군보다 규모가 작았던 달구화현이 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 지역에 소국이 있었다면 위화군과의 관련성에서 찾아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로국이 진한 12소국을 차례로 병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볼 때 이러한 추정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신라가 병합한 소국을 행정조직에 편입시키는 경우, 군(郡) 이상의 행정 규모로 편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사벌국이 사벌주, 압독국이 압독주, 조문국이 문소군, 감문국이 청주(나중에 감문군), 실질국이 실직주, 거칠산국이 거칠산군(나중에 동래군)으로 편제된 사례가 그렇다. 아무튼 삼한시대 진한의 12소국 중 하나가 우리 지역에 존재했다면, 그 명칭이 달구벌국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달구벌국 명칭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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