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창원의 기록여행] 수돗물로 세수하게 해달라

박창원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목하 개최 중인 미소공동위원회와 정부수립 문제가 급 전개하고 있는 차제 각 지방의 실정을 조사하여 건국사업에 참고자료를 만들고자~사회실정조사단을 조직하는 동시에 단원은 각 단체의 권위자 1명씩을 선출하여 구성하였다.~본대는 호남선 경부선 방면의 2대로 하여 오는 31일 오후 출발하기로 하였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 31일 자)

해방은 되었지만 사회‧경제적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한반도의 신탁통치와 임시민주정부 수립 논의를 시작한 미소공동위원회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자 사회단체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미군정 등에 전달할 필요성이 생겼다. 사회실정조사단을 만들어 여론 수집에 들어갔다. 이처럼 당시에는 당국이나 신문사조차 여론조사반을 결성해 일반 지방민들의 여론 동향을 알아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31일자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31일자

지금의 여론조사와는 비교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민심을 듣는 도구는 바로 발품이었다. 지금의 전화기를 발품이 대신했다. 그렇다고 매번 사람을 일일이 만나서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 투표함처럼 생긴 여론함으로 주민 여론을 듣는 것이었다. 해방 이태 뒤인 8월 초, 사람이 많이 오가는 도청과 역전 등 대구시내 10군데에 여론함이 설치됐다. 그 여론함에 의견을 적어 넣도록 했다.

여론함에는 주로 어떤 내용들이 들어왔을까. 정치 관련 의견이 80건이 넘을 정도로 가장 많았다. 정당 관련 의견이나 정치인 체포령 철회 같은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정치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가졌다. 게다가 이념적인 대결도 정치 관심에 한몫했다. 정치 관련 의견 중에는 국호를 인민공화국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앞서 실시했던 조선신문기자회의 여론조사에서도 적지 않게 표출됐던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의견도 빠지지 않았다. 쌀을 날짜에 맞춰 제때 배급해달라는 요구였다. 굶주림이 낯설지 않았던 식량난은 시간이 흘러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악질 경관을 제재해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악명 높았던 일제 경찰의 습성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수돗물에 대한 불만이 눈에 띄었다. 수돗물로 세수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두 차례씩 찔끔 나오는 수돗물이 시간조차 들쭉날쭉하다 보니 세수를 못하고 출근하거나 퇴근 후에도 씻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수돗물 혜택을 받는 사람도 적었지만 불만은 높았다.

사회실정조사단의 발품 조사나 여론함의 의견은 그 시점의 민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방 직후 '수돗물로 세수를 하게 해달라'나 '쌀을 제때 배급해 달라'는 그때로서는 다급한 사안이었다. 그런 여론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차츰 사그라졌다. 여론을 '순간의 스냅사진'으로 빗대는 이유다. 이번 4‧15 총선의 스냅사진도 그렇다. "누가 1위인가"는 눈에 띄어도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냐"는 숨은그림찾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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