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관계는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일까. 그리고 그 관계의 파국은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올까.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불륜 치정극 속에 섬세한 심리를 담아냄으로써 부부 관계의 적나라한 실체를 꺼내 보이고 있다.

◆뻔한 불륜극, 그 이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거두절미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이태오(박해준)와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지선우(김희애)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가장 완벽하게 보였던 세계의 파국. 하지만 지선우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건 자신이 알고 지내던 남편의 친구, 절친까지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대되는 대로 지선우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
이야기의 소재와 설정만 보면 '부부의 세계'는 우리가 그토록 막장드라마를 통해 많이 봐왔던 불륜치정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막장드라마의 대표적 사례로 얘기되는 '아내의 유혹' 역시 배신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수극이 아닌가.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그저 표피적인 불륜과 복수라는 코드를 활용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겪는 지선우의 심리를 보다 섬세하게 담아낸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지선우의 입장에 깊숙이 몰입되고, 그래서 그 충격과 분노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이입된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무엇 때문에 이런 불륜 치정의 소재를 통해 이제 무너져가는 한 부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담아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지선우가 착각했던 것처럼 가장 완전한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가족과 이를 지탱해주는 것이라 믿어온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며 뻔뻔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마치 자연스러운 것인 양 떠들어대는 이태오나, 세상에는 불륜하는 남자와 불륜을 들키는 남자로 나뉜다며 마치 모든 남자들의 불륜은 당연하다 말하는 손제혁(김영민) 같은 인물들의 무책임한 말과 행동, 생각들은 순식간에 부부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남자친구에게 상습적인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민현서(심은우)가 지선우를 도우며 동지적 관계가 되는 건 물리적 폭력이나 불륜 같은 정신적 폭력이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암시한다.
이처럼 '부부의 세계'는 뻔한 불륜에 맞불륜까지 등장하는 소재를 쓰고 있지만 이를 통해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세계에서도 자행되는 폭력을 드러내고, 그것이 얼마나 이 세계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드러냄으로써 부부관계가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한다. 배우자들 모두가 노력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 담긴 카타르시스의 정체
'부부의 세계'는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부딪치는 난타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난타전보다 더 타격감을 주는 건 이들의 말 하나와 어떤 행동 하나가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다. 이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식 앞날 생각해 용서하고 살라"는 시어머니에게 지선우가 던지는 말은 저주에 가깝다. "이혼할 겁니다. 빈털터리로 쫓아낼 거구요. 이 동네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겁니다."
이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고 지선우에게 은근히 접근해 맞불륜을 제안하는 손제혁을 오히려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이태오의 자산 관련 자료들을 모두 넘기라는 지선우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지선우가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야"라고 할 때 그 말의 타격감은 마치 불륜은 남자의 전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던 손제혁의 당황하는 얼굴을 통해 통쾌하게 작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부유층의 위선과 허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태오의 뻔뻔하고 저질스런 욕망이 그렇고,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랐을 것처럼 보이지만 엉뚱하게도 그와 불륜을 맺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다경(한소희)이 그렇다. 좋은 차에 큰 집에서 살아가지만 쇼윈도 부부인 고예림(박선영)과 손제혁 부부가 그렇고, 혼자 살아가며 남의 집 안 되는 걸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며 살아가는 설명숙(채국희) 같은 인물이 그렇다.
완벽해 보이지만 깨지기 쉬운 건 부부의 세계는 물론이고 뭐 하나 걱정 없을 것 같은 부유층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은 저 세계 역시 위태롭고 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관계의 파국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법이니 그 누구라도 노력하지 않는 관계는 깨지기 쉽다는 걸 확인하면서. '부부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바라봤던 부부라는 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그 포커스를 부유층의 실체에 맞춤으로써 시청자들을 더욱 깊은 카타르시스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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