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행위는 그것이 과거의 반성이든, 현재의 비평이든 간에 시대적 상황의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러한 현실적 시대성이 미술을 통해 드러날 때를 '회화성'이라고 할 수 있다.
홍익대서 판화를, 서강대서 영상을 전공한 권순왕 작가의 작품세계는 기억과 이미지가 원초적 오브제가 된다. 그는 시각 정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지배적인 사회 현상과 이에 따른 문화의 동질화 현상을 비판하고 본질에 대한 추구와 현실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우손갤러리는 올해 첫 기획전으로 권순왕 작가의 개인전 'Prainting(프레인팅)'을 열고 있다.
"현대사회는 미디어로 인해 개인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화가도 늘 현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넘쳐나는 이미지들은 프린트가 우선되고 있는 실정이죠."
존재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정물화를 재해석한 그의 작품을 보면 스타벅스의 로고가 등장하고, 인공지능과 이세돌의 바둑대결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 등이 눈에 띈다. 매혹적인 컬러와 형태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이미지의 표본들이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혼합되고 재구성되면서 함축적인 알레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개념판화' 장르를 개척해왔고, 1992년부터 시작한 회화작업에서는 기억과 이미지 그리고 이미지의 프린트(Print)활동으로서 작가가 추구하는 가상의 공간, 즉 캔버스에 그리는 행위인 페인팅(Painting)을 합쳐 프레인팅(Prainting)이란 조형언어를 직접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그의 개인전 테마가 'Prainting'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보면 화면 속 공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수많은 수평선과 가시광선들이 가로지르며 그물처럼 얽혀있는 거대한 추상적 공간과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친숙한 사물들이 정물처럼 배치된 배 혹은 요람 같은 공간이 연출되고 있다.
권순왕의 이런 가상적 회화공간은 다양한 사회와 문화적 양상을 암시하며 각기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인식의 장을 찾고 있는 듯하다. 실재는 간 곳 없고 그 실재의 복제만이 판을 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셈이다.
"구체성과 연관된 기억은 이미지를 통해 추상성을 동반하면서 어느새 진짜는 찾아볼 수 없게 될 때가 많습니다."
복제될수록 진짜와는 멀어지는, 이미지만으로 꽉 찬 현대사회에서 진짜는 어디에 있는 걸까?
과학과 첨단 기술이 인간의 삶 속에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있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고유성을 가진 것들이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순왕 작가는 바로 이 점을 그의 회화성의 화두로 삼고 캔버스에서 웅변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권순왕 작가의 두 번째 대구 전시로 6월 26일(금)까지 열린다. 문의 053)427-7736.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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