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5) 4.15 총선과 야당

미래통합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15 총선 참패 원인과 수습책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15 총선 참패 원인과 수습책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4.15 총선이 오늘로써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총선 결과를 마음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덜미를 잡아끄는 뭔지 모를 의혹과 불길함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국가부채 1800조, 가계부채 1100조 등 빚더미 나라 살림에 망가진 경제 체질, 여기에 코로나 경제위기까지 몰려오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이런 결과를 유인한 이번 선거는 민주 없는 민주당, 통합 없는 통합당의 승부였다고 할 수 있다. 혹평하자면 폭정(暴政)과 무정(無政)의 싸움이었다. 우리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3류 정치의 실상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여기에 대통령과 여당, 선관위, 방통위, 공영-민영언론이 관권, 금권, 여론을 입맛대로 주무르면서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대통령이 여당 승리의 최대 공로자라 하니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사전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수도권 사전선거와 당일선거의 여야 지지율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두 선거의 선거구별 여야 득표율 차이는 대개 ± 3,4% 이내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 10~15%로 여당 압승의 결정적 이유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야의 관내/관외 사전투표 득표율이 99% 일치하는 등 이해 불가능한 우연들이 겹쳐 일어났다며 이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불투명한 사전투표의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제21대 총선일인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당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제21대 총선일인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당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영남 유권자들의 역할과 대통령의 실향

부정선거 의혹을 묻어둔다면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이 아니라 야당 심판으로 결말이 났다. 선거정국을 한 번도 주도하지 못하고 여당에 계속 끌려 다닌 결과다. 야당은 코로나 사태를 업은 관권, 금권, 선동정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고질적인 내분을 노출시키며 자멸하고 말았다. 지난 총선, 대선, 지선에 이은 네 번째의 패배다. 유권자들은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맹물 야당보다 폭정과 실정이라도 하는 여당을 선택한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뒤집어 해석해볼 수도 있다. 맹물 야당이 41%, 1200만 표를 얻었으니 야당이 제대로 싸웠다면 압도적 승리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당이 호남을 정치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대통령은 총선 결과로 정권의 동력을 확보했을지 모르나 자신의 고향을 잃어버린 정치적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이는 영남에서 자랐다고 경상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일이기도 하다.

경상도는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는 선인들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의 중심을 지켜온 지역이다. 나라와 대의를 우선하고 억강부약하는 지역민들이 기질이 이런 평가를 가능하게 했다. 이번 선거에서 영남 유권자들은 관권, 금권, 선동선거에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 호주머니나 지역의 이익보다 국가의 장래를 우선했다는 신념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영남에서 여당 압승의 판세를 연출했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일당 국가의 후진국 함정으로 빨려들어 갔을 것이다. 영남이 정권 폭주의 균형추 역할을 한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다행으로 여겨야 할 일로 해석된다.

보수야당의 이념과 리더십 재건

이제 남은 문제는 파산 상태의 자유우파 보수야당을 재건하는 일이다. 강한 야당 없이는 정권의 폭정과 부정부패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무너진 것은 우파의 이념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파의 새로운 비전과 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념 정체성의 뿌리가 부실하니 중도와 사이비 우파에게 코가 꿰여 이솝 우화의 팔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처절한 각성을 바탕으로 국가의 지향 즉 자기중심을 되찾아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기 대선까지를 염두에 둔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의 야당 주요 인물들은 자격미달임을 국민들에게 널리 각인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선거를 통해 그 나물의 그 밥인 리더십을 지속시키는 것은 현명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유우파의 이념을 대변할 새롭고 힘 있는 리더십을 발굴해 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리더십뿐 아니라 당 조직을 확대 정비하고 당 사무국과 의원 보좌관들까지 일신하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국회의원들도 모조리 바꾸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정신무장을 위한 호된 집체교육이라도 있어야할 것 같다.

야당의 내분과 자멸을 유도하는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기록적인 선거 4연패의 이유가 내분에 있었는데도 그 전철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당을 짓밟고 칼질하며 자멸을 부채질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여당과 싸워야 할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자당에 대한 해괴한 정치평론을 업으로 삼고 있다. 소위 대선 후보에 나섰던 홍, 유 같은 사람들까지 여기에 가세하니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자기정치를 위해, 자기변명을 위해 자당을 제물로 삼는 이런 배신세력을 척결하지 못하면 야당은 다음 대선에서도 필패다. 정치평론은 국민과 언론의 몫이지 야당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내분 조장세력 단죄와 언로의 보호

야당의 난센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권의 폭정과 실정을 고발하는데도 실패했다. 건강한 야당이라면 정권이 감추고 숨기고자 하는 문제와 의문, 의혹을 제대로 여론화할 수 있어야 한다. 개는 짖으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인들의 언로를 최대한 열어주고 거기서 빚어지는 실수를 보호해주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다.

그런데 매번 총대를 거꾸로 잡는 길로 갔다. 자멸적 내부 망언은 방치하면서 문제, 의문, 의혹 제기에 망언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자당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기 일쑤였다. 이번 선거에서 과거 발언을 공천심사 기준으로 삼은 것이나 제 풀에 놀라 후보 두 명을 제명한 것은 선거를 망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설사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냥 두는 게 지금의 결과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양과 질에서 훨씬 고약한 망언을 해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부 총질 즉 여론의 증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범시민단체연합 회원과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인천범시민단체연합 회원과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15총선에서 부정선거 사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 증거보전 신청과 재검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부정선거 의혹을 법적 문제로 제기한 자당 의원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그냥 두고 보는 것은 고사하고 십인십색의 자해적 평론을 해대는 야당을 보면 한숨이 새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의혹보도 윤리기준은 진실을 절대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진실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의 집요한 공작과 방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런 무기가 주어져야 한다. 야당의 줏대 없고 소심한 정치로는 종북 주사파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선거였다.

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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