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바깥 날씨는 화창하다. 꽃이 피고 나뭇잎의 녹색 빛깔도 짙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날씨는 따뜻해지는데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거리에 조금씩 인파가 늘긴 하나 예년 이맘때처럼 활기가 돌지는 않는다.
학교는 더하다. 학생들로 생기가 넘치던 모습은 안 보인다. 교직원들만 드나들 뿐이다. 온라인으로 개학했을 뿐, 아직 등교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마음이 담긴 편지 한 통을 소개한다.
◆나은아, 우리 5월에는 꼭 만나자

3학년이 된 나은아, 원격수업 때문에 통화하시는 선생님들을 통해 현재 학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요즈음 원격수업 받느라고 힘들지?" "그래도 재미있지?" "학교에 오는 것이 더 낫다고? 선생님하고 수업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언제 학교에 갈 수 있냐고?" "조금만 더 기다려. 곧 학교에 올 수 있단다."
나 자신도 익숙하지 않은 원격수업을, 우리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도 성미에 차지 않아서 참 힘드네. 그래도 어떻게 하겠니? 희망과 기대로 3학년 준비를 열심히 한 나은이 못지 않게 학교에서 너희를 만나지 못하는 우리 선생님들도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란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이렇게 편지를 쓴다.
나은이 집은 교문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연결되는 공동주택의 6층이지. 그 집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바로 보이는 곳이 우리 학교잖니. 말 그대로 지척에 있는 거지. 학교는 오늘도 어제처럼 조용하다. 주인 잃은 운동장에는 4월의 바람이 지나가고, 가끔씩 업무용 차량이 교문을 드나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해까지 새로운 학년도의 첫날은 언제나 그랬듯이 분주하고 바쁜 날이었단다. 내가 부임했던 지난해 첫날도 바빠서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올해 우리 교육가족들이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지난 3월 2일은 사뭇 달랐다.
그야말로 텅 빈 느낌, 공허감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낸 기억만 남아 있네. 이상한 하루였어. 학기 시작을 위한 첫 직원회의도, 개학식과 입학식도 없었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라는 희한한 존재 때문에 낯선 풍경이 되어 버렸다.
일을 해야 하니까 선생님 몇 분이 학교에 나오셨어. 하지만 아주 조용한 하루를 시작하고 마쳤네. 마스크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리고 서로 대화도 잘 하지 않았지. 이상한 나라에 사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단다.

나은이와 친구들이 없는 교정에 백목련은 말없이 피었다가 졌고, 개나리도 왔다가 갔다. 초등학교 뒤쪽 울타리에 서 있는 세 그루 라일락도 향기를 다 했지. 시청각실 앞의 동백은 이제 마지막 송이를 다 내리고 있단다.
우리 학교는 겨울 방학을 하던 날부터 시설과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음 학기에 교육활동을 더 잘 하기 위해서지. 석면 소재로 된 교실 천장을 친환경 소재로, 낡고 색 바랜 커튼은 최신형 블라인더로, 냉난방기도 최신형으로 교체했어.
개교 이래 지금까지 일반 교실을 음악실로 사용해 활동에 제약이 많았지. 그곳은 방음이 잘 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혜의 샘 느티나무도서관의 서가와 시설도 새로 단장했어. 방송실도 최신 기자재와 설비를 들여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바꾸었단다. 모두 너희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해주면 고맙지.
이 대목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단다. 3월 우리 학교에 이헌우 교감선생님이 부임하셨는데, 그분이 그리신 '주제가 있는 벽화' 작품이 바로 그것이야. 미술교육을 전공하신 교감선생님은 기량이 보통 선생님들과는 다른 분이셨어.
부임하신 후 한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계단과 통로를 보시고는 주제가 있는 벽화를 그려서 교육가족들에게 선물을 하시겠다고 제안하셨단다. 학교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며.
나도 속으로는 좋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도 교감선생님께서 힘드시지 않겠느냐고 만류했지. 하지만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기간을 이용해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하셨어. 시간이 흐르고 작업이 진척되면서 1층부터 5층까지 큰 도화지(?)는 날마다 화장을 고치고 옷을 바꿔 입는 멋쟁이로 변해 갔단다.
1층 첫째 그림은 화단에 뿌리를 내린 꽃들은 머지 않아 '예쁜' 꽃으로 피어나리나는 기대를 받고 자란다는 걸 표현한 거야. 2층에는 '기 죽지 않고 열심히 산 노력'의 댓가로 꽃을 피워내고, 3층에서는 제법 모습을 갖춘 나무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그렸어.

4층에는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종이비행기와 열기구를 타고 노력하는 과정을 담았지.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받고 분발하는 노력을 나타낸 것이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5층에서는 뭉개구름이 떠 있는 산봉우리에 도착해 아늑한 해변을 바라보며 평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이지.
벽화를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지난 학기까지 본 계단의 모습은 간 곳이 없어. 차이가 많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새 역사 창조'의 현장이지. 등교하는 날 잘 살펴보렴. '이렇게 큰 그림을 멋지게 그린 분이 누구실까' 하면서 깜짝 놀랄거야.

우리 학교의 중앙 계단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공간이지. 5층에 서부교육지원청 Wee센터가 있어서 다른 학교의 학부모와 학생들도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야 .이번에 환경 구성이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해.

나은이와 친구들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한 날도 선생님들은 원격수업 지도와 학교 가꾸기를 계속 하고 있단다. 너희를 반갑게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봄을 피워낸 강인한 꽃처럼, 우리 친구들 모두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 뼘 더 자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꾸나.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야. 우리 교육가족 모두 다시 만나는 5월 그 어느 날, 하늘도 푸를 거야! 우리의 이상도, 교감선생님께서 그려 놓으신 벽화의 열기구와 종이 비행기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갈 거야.
2020년 봄 대구 팔달중학교 교장 김상도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