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봄날은 간다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가수 백설희의 데뷔곡 '봄날은 간다'는 대구에서 탄생했다.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어느 봄날의 애상이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너무나 화사하던, 그래서 더욱 슬펐던 봄날의 역설이다.

여가수의 낭랑하면서도 체념적인 목소리는 그렇게 전쟁의 상처를 껴안은 사람들의 한스러운 내면을 위로했다. 코로나 전염병 대란 속에 환란과 모멸을 감수하며, 설마했던 상반된 투표 결과에 고개 숙인 대구경북 사람들의 2020년 봄날 또한 그러할까. '봄날은 간다'에는 한국인이 공감하는 한(恨)의 정조가 스며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마흔 중반은 넘겨야 제맛과 멋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농익은 가사와 구성진 가락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려면 그만한 세월의 숙성이 필요할 것이다. 한때는 독립운동의 성지였고, 6·25전쟁의 최후 보루였으며, 민주화와 산업화의 현장으로 역대 권력의 본산이었던 대구경북이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그러했듯이 올봄 코로나 사태와 총선 후유증으로 피폐한 대구경북민의 가슴에 이만큼 짙은 서정과 깊은 공감으로 와닿는 노래도 없으리라.

화려한 봄날에 배어든 회한의 정서, 그것은 정녕 가버린 세월을 한탄하는 정한만은 아닐 것이다. 끝자락에 선 봄날의 처연함이란 종말의 변주를 거쳐 또 새로운 희망을 머금는다. 봄날에 대한 애사(哀詞)와 절창(絶唱)은 시공을 초월한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송춘사(送春詞)에서 '기쁘게 서로 술잔 마주하고 있으니, 꽃잎 흩날린다고 아쉬울 게 무엇인가'(相歡有尊酒 不用惜花飛)라고 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도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섬돌 앞의 오동잎은 어느새 가을 소리인고'(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라며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속절없이 가는 봄에 대한 애틋한 심사가 현대의 시인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김소월은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 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기형도 시인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라고 했다. 어느 시인은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봄날이 간다'고 서러워했고, 어느 시인은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고 했다. 시인의 송춘(送春)은 계절과의 작별 그 이상일 것이다.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르지만, 흐르는 물은 무심히 꽃을 흘려보낼 뿐'(落花有意隨流水 流水無意送落花)이란 시구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를 읽는다. 어차피 가려고 오는 봄이다. 화려한 봄날일수록 더욱 허망하게 스러지기 마련이다. 부질없는 미련이 무슨 소용인가. 판소리 단가 사철가에는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보내는 아픔을 감내하고서야 더 성숙한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형기 시인은 '낙화'(落花)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다.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는 슬픔의 봄날이 영욕의 민족사와 함께해온 대구경북민의 서정과 더불어 또 한 번 저물어 간다. 꽃다운 낙화일수록 더 농염한 술단지가 필요할 것이다. 격정과 굴욕을 감내한 나의 한 시절도 이렇게 결별을 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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