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족과 달성군 강정보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였다.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향했지만 바글바글하던 사람들로 바람을 쐬기는커녕 핸들을 다시 되돌려야만 했다. 실은 그리 놀랍지 않은 풍경이었다. '코로나19' 현장을 취재하며 이미 많이 마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두 달간 시행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옅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면서 지침은 단지 참고할 매뉴얼에 불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이 다른 두 모습으로 좁혀졌다. 내일이란 없는 듯 하루살이 불나방 같던 이들에게는 수오지심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생업을 이어가던 이들에게는 측은지심이 든 것이었다.
수오지심은 주말마다 일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어울려 부둥켜 안고 마셨다. 동성로의 노래방에는 평일 낮임에도 마치 불타는 금요일 밤을 연상시키듯 직원들이 서빙으로 분주했다. PC방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가 무색할 만큼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고, 보드게임 카페에는 학생들이 마스크를 입에 걸친 채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밤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술집은 지금이 2020년 4월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손님과 종사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거리두기'란 단순 구호에 그친다는 듯 귓속말을 하거나 상대방과 몸을 접촉한 채 춤을 추기도 했다. 인기 있는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 좁은 계단에 다닥다닥 서서 줄지어 기다리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측은지심은 절박한 삶에서 나왔다. 생계의 '절박함' 앞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였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에서는 서글픈 비장함마저 묻어났다. 취업준비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코로나 감염이라는 전선을 뚫어야 했다.
대구의 한 공무원 학원 자습실의 열기는 꺼질 줄 몰랐다. 자습실 책상 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칸씩 띄어 앉아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자리가 다 찬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코로나19로 불안하지 않으냐는 물음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에 가까웠다.
"그런 것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냐. 시험이 다시 언제 진행될지 불안한 게 제일 크다"는 답이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수험생들은 거리를 두라며 밀어내는 사회에서 밀려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구도시철도에서 전동차와 역사를 청소하는 노동자들도 잊히지 않는다. 온갖 이물질과 취객을 싣고 오는 전동차 안에서 취객을 흔들어 깨우다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두렵지만 낯선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고 어깨를 흔들어 '접촉'해야 했다. 그게 그들의 밥줄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좁혀가는 이들과 따분함을 떨쳐내려 거리를 좁혀버린 이들의 간극은 커 보였다. 여러 사람을 태워야 해 미안하다며, 결제를 끝낸 신용카드를 살며시 의자 위에 얹어주며 또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택시운전사의 모습은 벚꽃 풍경 대신 올해 봄 뇌리에 박힌 기억이 됐다.
코로나19에서 그를 지켜주는 방패, 마스크와 택시에 비치된 소독제 하나만 들고 생계 전쟁에 뛰어든 누군가의 가장이었다. 그는 또다시 누군지도 모를, 미지의 손님을 찾으러 바쁘게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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