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중소 규모 병·의원들은 사상 유례 없는 코로나19 환란(患亂)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였고 이로 인한 피해가 집중됐음에도 정부 차원의 배려는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그동안 정부는 의료기관들을 대상으로 손실보상의 하나로 금융자금 지원, 건강보험 청구금 선지급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지역 병원가에선 전혀 현실에 와닿지 않는 생색내기용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코로나 직격탄에 우는 지역 중소병원들
대구 수성구에서 여성질환 전문 산부인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2월부터 몇달간 예약된 수술이 대부분 최소됐다. 자궁근종이나 내막증 등 시기가 급하지 않은 수술은 여성들이 병원에 오는 것조차 꺼려했다"며 "그 여파로 병원 전체 매출 손실은 2월 5억원, 3월은 8억원으로 매달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환자 급감은 소아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부모들이 면역이 약한 자녀들의 병원 내 감염을 두려워해 병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달서구의 한 소아과병원의 경우 지난해 3월 4천200명이었던 외래환자가 올해는 같은 기간 600명뿐이었다. 한달 평균 800명가량이었던 입원환자도 60명이 고작이었다. 이 병원 B원장은 "병원 매출액은 3월 전년대비 85% 줄었고, 4월은 92%나 감소했다. 하는 수 없이 4명의 원장이 돌아가면서 무급으로 쉬고 있다"고 했다.
건강검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병원들도 환자 구경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해 수성구에서 대규모 시설을 갖춘 C검진센터는 "신규 채용한 4명의 내과원장들에게 나흘에 하루씩 근무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예약 검진이 없어 오전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노인성 질환이나 허리디스크. 무릎, 고관절 등 수술을 많이 하는 병원에도 환자 방문이 끊겼다. 정형외과 전문 D병원장은 "골절이나 사고로 인한 응급성 수술이 아니면 환자가 없다"며 "그렇다고 인력 확보가 어려운 간호사를 줄이거나 병원에서 영향력이 큰 진료과장의 급여를 쉽게 삭감할 수도 없어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병원 평균 한달 4억원 이상 적자, 못 견디면 결국 도산
의료계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병원들의 경영 악화가 구체화되고 있고, 자칫 의료기관의 연쇄적인 도산으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E원장은 "병원계의 특성상 어려운 형편이 드러나면 그나마 적은 환자마저 돌아설까봐 쉬쉬하고 있다"며 "최근에 한 두 병원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귀뜀했다.
앞서 대한지역병원협회가 전국 62곳의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월 평균 매출액 변화 를 파악한 결과 ▷1월 전년 대비 평균 6천83만원(-4.3%) 감소 ▷2월 평균 8천396만원(-8.4%) 감소 ▷3월은 평균 4억400만원(-32.5%)으로 매출 감소 폭이 갈수록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병원가에서는 대구경북이 전국 병원 평균보다 매출 감소 규모가 월등히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병원급 2차 의료기관은 1차 동네병원과 3차 대학병원의 중간에서 의료전달체계 유지의 허리 역할을 하는데, 병원의 경영난 가중은 의료자원의 공백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고삼규 대한병원협회 대구경북지부 회장(보광병원장)은 "병원급은 매출액 대비 수익률이 3, 4%에 불과한 반면에 인건비 비중은 45~50%가량 차지한다"며 "환자 감소가 이어진다면 상당수 지역 병원이 누적 적자를 견딜 수 없어 앞으로 몇 달 내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해 의료기관 지원한다고 정부는 생색만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국면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대구지역 의료인들의 희생과 헌신은 해당 병원의 경영난 앞에서 허탈할 뿐이다.
지역 의료인들은 7천명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도 대구였기에 의료 인프라를 가동해 감당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달서구에서 150병상 규모 병원을 운영하는 F병원장은 "우리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응급실과 병동을 폐쇄하고, 직원들도 60여명 자가격리를 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후에도 사명감 하나로 안심병원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혼자 800명의 검체 채취를 했다"면서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선별진료소 진찰료 1만5천원이 전부고, 텅빈 병원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두 달간 병원 손실이 12억원이여서 코로나19 피해 의료기관 대상 융자사업에 신청했더니, 기존 병원 대출(메디컬론)이 있다고 해서 단박에 거절당했다"고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긴급지원 해준다는 금액은 4천억원. 의료기관 직접 대출로는 유일하다.
하지만 이 융자금은 전국 9만5천여개 모든 의료기관이 신청 자격이 있어,돌아갈 평균 금액은 고작 400만원이다. 2년 거치에 대출 금리는 2.15%이지만, 대구경북 특별재난지역 의료기관은 1.9%를 적용한다는 '특혜'를 내세웠다.
이 대출을 신청했다는 G원장은 "은행에선 담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담보 여력이 있으면 왜 돈을 빌리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정부는 경영 개선에 도움이 안 되는 쥐꼬리만한 융자를 하면서 생색내기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유급휴직에 들어가는 근로자의 임금 70%를 보전해 주는 고용유지 지원금도 병원의 입장에선 '그림의 떡'이다.
H병원장은 "입원실이 있는 병원은 상시 3교대 근무가 원칙인데 일정 부분 인력이 빠지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정부의 임금 지원 정책도 결국 병원에는 해당되지 않아 상실감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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