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메타의 생활화  

박병욱 영천고 교감
박병욱 영천고 교감

장정일 작가는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라는 시에서 자신의 시 창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메타시다. 가끔 자신의 일기를 소재로 일기를 쓰기도 한다. 메타일기다. 비평가들의 비평을 다른 비평가가 비평하기도 한다. 메타비평이다.

'A에 대한 A', 'A에 대한 성찰이나 통찰'을 '메타'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더 높은, 초월한'이라는 뜻이다. '인지'에 대한 메타는 '초인지'가 되고 형이상학의 철자는 'metaphysics'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正)-반(反)-합(合)'의 변화 과정에 주목한 근대적 논리 전개 방식이다. 정(正)의 단계는 일종의 무자각 상태이며 반(反)의 단계에서는 그 무지에 대한 반성이나 자각이 일어난다. 그리고 합(合)의 단계에서는 정이나 반이 아닌 역설적(逆說的) 결론에 이르게 된다. 헤겔의 변증법도 메타적 성격을 지닌다.

바다를 눈앞에 둔 강물처럼 고3 수험생들은 막바지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어느 산, 어느 계곡 언저리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이제 바다에 다다르고자 하는 때다. 지난 11년보다 남은 몇 개월이 중요한 이유다. 화룡점정의 긴장된 순간을 앞두고 있다고나 할까.

대입 전형이 다양해진 요즘, 수험생들은 지금쯤 전략적 선택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한다. 살아가는 과정을 굳어가는 시멘트에 빗대곤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고 3은 아직 말랑말랑한 시멘트이지만 입시의 시간으로 보면 상당히 양생이 진행된 시멘트가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메타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방향 모색의 첫 단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좌표 확인이다. 먼저 횡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신, 모의고사 성적, 학생부종합전형에 유용한 각종 활동들을 꼼꼼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종적으로 보아야 한다. 전형별로 많은 데이터가 누적되어 있고 정보가 공개된 상태다.

문제는 분석이다. 알파고의 힘을 빌든, 경험 많은 선생님들의 안목을 구하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속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방향이라는 것도 속도를 내다 보면 문제가 된다. 갈 길을 정해두고 속도를 내다 보면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성찰이 메타다.

좀더 현실에 다가서 보자. 목표나 방향은 노력보다는 결과에 의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6개 대학에 수시 지원을 할 때 과연 소신으로만 밀어붙일 수 있을까? 성적 생각 없이 배짱만으로 선택지를 메울 수는 없는 법이다.

속도와 방향은 원심력과 구심력의 관계처럼 그 균형에 방점이 있다. 속도나 방향도 메타를 활용할 때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 균형마저 넘어설 때 새로운 메타가 일어나고 속도와 방향은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된다.

수험생 생활은 자신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고 그 쾌감을 맛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묻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메타 활동은 결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 삶 자체가 그렇듯.

'메타'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한 편의 시가 첫눈에 울림으로 다가올 때는 감성이 먼저다. 여기에 메타의 과정을 더하면 온몸으로 시를 공감할 수 있다. 그렇듯이 메타를 생활화한다면 고3 생활이 한결 매끄러워져 반짝일 것이다. 수험생 생활 그 들머리에서 메타의 생활화, 생활의 메타화를 바라마지 않는다.

박병욱 영천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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