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타이스 명상곡, 변학도와 오거돈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B.C1세기. 나폴리박물관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B.C1세기. 나폴리박물관
김문환 역사 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

이제는 전설이 된 테너 파바로티의 미성으로 듣던 산타 루치아. 나폴리만의 산타 루치아항은 79년 쾌락의 도시 폼페이를 집어삼킨 베수비오 화산을 병풍으로 둘러친다. 아름다운 항구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거리에 나폴리 국립박물관이 나온다. 1749년부터 폼페이에서 발굴한 핵심 유물들이 탐방객을 기다린다. 2층 모자이크 전시실로 가면 '이수스 전투'가 위용을 뽐낸다. 폼페이 파우노의 집에서 발굴한 B.C 1세기 모자이크다.

알렉산더와 당시 세계 최대 제국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가 B.C 333년 터키 남부 이수스에서 펼쳤던 세기의 대결을 담았다. 가로 5.82m, 세로 3.13m에 무려 150만 개의 미세한 테세라(대리석 조각)를 사용한 대작이다. 투구도 안 쓰고 공격 중인 알렉산더의 용맹과 겁먹은 다리우스 3세의 표정이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승리한 알렉산더는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가 주인 잃은 제국의 안방에 똬리를 튼다.

▶페르세폴리스 불태운 기생 타이스

이란 남서부 역사 고도 페르세폴리스를 찾은 건 2001년 3월이니 19년 전이다. 건물 주춧돌만 남아 역사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왜 잿더미가 됐을까? 시칠리아 출신 B.C 1세기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는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카'(역사박물관)라는 세계사 책에 한 여인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묘사한다. B.C 330년 알렉산더가 심포지온(회식) 도중 술 취한 상태에서 총애하던 헤타이라(기생) 타이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거다. 페르시아가 B.C 480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불태운 복수로 페르시아 궁전을 불태우자는 취지였다. 디오도로스는 알렉산더, 타이스, 헤타이라들, 장군들 순서로 횃불을 던져 궁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적는다.

▶알렉산드리아 성자 타이스

B.C 323년 이라크 땅 바빌론에서 알렉산더가 33세의 나이로 급사한 뒤, 타이스는 이집트 총독이 된 연인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을 따라 이집트로 간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연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후궁이 돼 3명의 자식을 낳는다. 타이스라는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에서 800여 년 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재등장한다. 흑해 서부 루마니아 콘스탄타(옛 스키타이 땅)에서 태어난 동로마제국 신학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성자 타이스 이야기를 6세기 '타이시스'(Thaisis·타이스의 삶)라는 기록으로 남긴다. 세속적인 기생에서 기독교 성자로 변신한 게 놀랍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현대인이 쓰는 달력(그레고리력이나 그리스 정교에서 쓰는 율리우스력)의 기본 연도, A.D(Anno Domini·주님의 해)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A.D 2020년이라고 쓸 수 있는 것은 이 사람 덕이다.

▶타이스 명상곡

기생과 성자가 뒤섞인 타이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실린 바이올린의 애절한 음색 '타이스 명상곡'으로 19세기 말 다시 태어난다.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가 1890년 소설 '타이스'(Thais)를 쓰고, 작곡가 쥘 마스네가 이를 1894년 오페라로 바꿔 무대에 올린다. 배경은 5세기 동로마제국 알렉산드리아. 2막 1장에 수도사 아타나엘(소설에서 파푸누스)이 쾌락에 탐닉하는 기생 타이스에게 새 삶을 권한다. 2막 2장에 타이스는 고뇌 끝에 타락한 삶을 접고 기독교 귀의를 다짐한다. 타이스 명상곡은 이 대목, 2막 1장과 2장의 막간곡(entracte)으로 연주된다. 세속에서 신성으로 귀의하는 순간 영혼의 울림을 담는다. 하지만, 오페라는 역설적으로 아타나엘이 육욕을 누르지 못하고 타이스를 향한 일그러진 욕정에 불타오르며 막을 내린다.

▶춘향전 변학도와 부산 오거돈

일그러진 욕정은 춘향전 변학도로 옮겨붙는다. 1700년경 처음 등장해 무려 120종의 이본이 생길 만큼 인기 높은 춘향전에 기생 점고 장면이 나온다. 남원부사 변학도는 부임하자마자 기생부터 불러들인다. 2011년 출간된 '창악집성'(하응백 엮음, 휴먼 앤 북스)의 판소리 가사를 보자. "그때여 사또는 동헌에 좌정후 여봐라 호방형리 듣거라. 이 고을에 미인 미색이 많다 허니. 다른 점고는 삼일 후로 미루고 우선 기생 점고부터 하렸다…." 명을 받은 호방이 불러들여 부르는 기생 이름만 무려 20명…. 변학도를 돌려세울 공직자가 부산시장이었다.

이 사람의 심포지온(회식) 사진을 보면 여직원들을 좌우는 물론 앞에도 앉혔다. 집무실로 불러 성추행도 모자라 관용차 성추행 의혹도 불거졌다. 불법 인권침해다. 피해자 인권은 뒷전인 채 소속 정당의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 두드러져 더 답답해진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조선시대 탐관오리 변학도 수준으로 전락시킨 시장의 소속 정당이 유례없는 총선 대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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