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장 출신이다. 선박을 이용한 대양 항해의 발전 단계에는 수백 년 동안 큰 진전이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 이전에는 누구도 유럽을 벗어나서 대양 항해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중해의 끝단에 있는 스페인의 지브롤터를 벗어나면 선박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자들은 예측 불허의 바다로 나갔다. 나무로 만든 배와 돛으로 대양을 항해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바다는 위험 그 자체였다. 17세기에는 10척의 선박이 출항하면 7척만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철선이 만들어지면서 항해의 안전성이 높아졌다. 이제 사람들은 선박을 안전한 항해와 귀항이 가능한 운송수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예측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역이 이루어진다. 선박을 통해 특정 상품을 상대방에게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수출자와 수입자에게 있지 않다면 국제무역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물과 공기와 같이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예측 가능성의 기능은 대단히 중요하다.
선박 하나만을 두고 보더라도 인류는 선박의 안전 항해 확보라는 예측 가능성의 증대를 목표로 꾸준히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의 큰 흐름도 예측 가능성을 달성하려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의 전공인 상법학도 예측 가능성의 달성에 그 이념을 두고 있다. 계약상 분쟁에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해야 거래가 활발히 성사될 수 있다. 상법에는 표준계약서의 사용 등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많은 법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예측 가능성이 전혀 없는 깜깜이를 지향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하다. 선거제도를 보자. 우리나라는 정당의 당원이나 국민의 투표로 그 지역 국회의원 후보를 정하는 경선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신인들은 아무래도 기존 정치인에 비하면 인지도가 열악하니 가산점도 부여한다. 그런데,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원래 예측된 제도상 경선을 거치지 않고 전혀 모르는 인물이 후보자로 공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제도의 실시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예측 가능성에 반한다. 지역에서 예비후보자들은 몇 년에 걸쳐 경선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략공천으로 예상치 못한 인물이 경선 후보로 지명된다면, 다음에는 누가 경선을 준비하겠는가? 그렇다면 전략공천 지역을 적어도 6개월 전에는 공고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도 마찬가지다. 경북에는 대혼란이 왔다. 어떤 정당에서 각 선거구에 후보자를 발표한 다음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구가 획정되어 그 정당에서 이를 바꾸어 발표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예측과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다. 예비후보자들은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를 축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인데, 하루아침에 선거운동을 해야 할 지역이 변경되다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가지 점은 예측 가능성의 증대라는 인류가 지향하는 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이 불확실하거나, 예기치 못한 전략공천 상황이 또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과연 우수한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겠는가?
우리나라의 각계각층은 예측 가능한 사회를 달성하는 것을 큰 목표로 삼고 나가야 한다. 장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드는 비용은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란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경시하게 된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수습한다고 야단을 친다. 먼 미래의 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예측하고 그 준비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 번 경험한 부정적인 것들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고 확인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각 분야를 예측이 가능하게 만들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보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하자. 예측 가능성의 확보야말로 우리나라 정치,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이념이자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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