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결혼 선물과 빅토리아 웨딩종

빅토리아 웨딩종
빅토리아 웨딩종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코로나19가 안정되어가니 계절의 여왕 5월에는 그동안 취소되었던 젊은이들의 결혼식도 다시 많아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결혼하는 부부에게는 축복의 의미가 담겼거나 생활에 필요한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미국 여성지는 세계의 특이한 10대 결혼 선물을 소개한 바 있다. 부지런함을 뜻하는 독일의 뻐꾸기 시계, 마음에 사랑을 새기라는 베트남의 분홍 석필, 마당에 뿌리를 내리는 네덜란드의 백합 구근, 살림 밑천인 프랑스의 빈티지 린넨, 인도의 금은보석을 장식한 행운의 줄과 함께 우리나라의 금슬 좋은 목각 기러기 한 쌍 등이었다. 페루의 음식과 꽃을 담은 성스러운 바구니와 수단, 신부를 위한 향수도 독특한 선물이다. 결혼식에서 신혼부부와 춤출 수 있는 자격을 사는 멕시코의 현금 선물도 포함되었다. 사랑과 희망을 담은 각 민족의 독특한 선물이다.

중세 이후 서양의 전통 결혼 선물은 면화와 종이류, 가죽류, 린넨, 과일이나 꽃, 나무와 금속 생활용품, 모직류와 도자기 등 필요 생활품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이아몬드와 보석은 귀족이나 부유한 집안에 국한된 선물이었다. 경제 발달과 함께 도시가 형성되며, 부부가 예물을 주고받고 하객들은 부부에게 선물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인기 결혼 선물은 시계, 도자기, 유리와 크리스털, 가전제품, 목제가구, 은제품, 필기구와 탁상용품과 몇몇 생활용품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 및 금제품과 시계가 결혼 선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미국 신혼집 대부분에는 선물로 받은 시계 라디오나 토스터 오븐, 프랑스제 냄비가 있었고, 도자기, 크리스털 등의 생활집기, 린넨, 장식 화병도 인기가 있었다.

필그림회사의 가난한 자의 웨딩종
필그림회사의 가난한 자의 웨딩종

우리나라는 대부분 축의금을 전달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선물 증정은 않는다. 서양에서도 지금은 리셉션 식사비를 기준으로 선물과 축의금을 결정한다지만 일반적이지는 않고 돈을 결혼식장에서 직접 전달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는 결혼식장에 초청되면 원하는 부부가 품목을 문의하고, 지정된 상점에 물건 대금을 지불했다. 미국에서도 하객들이 부부의 웨딩 선물 목록 중 선택하여 선물했으나, 이제는 해당 금액을 수표로 준다고 한다.

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하는 부부에게 아름다운 유리종을 선물했었다. 이것이 알려지며 영국 사회에는 결혼식 선물로 높이 30㎝ 정도의 화려한 유리종을 선물하는 풍습이 유행했는데, 이를 '빅토리아여왕 웨딩종'이라 한다. 손잡이는 여러 가닥의 물방울 모양 매듭을 만들었고, 파리에서 수입한 접착제로 유리종 몸체와 붙였다. 그러나 큰 유리종은 보관이 어려웠고, 잘 깨졌기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다. 웨딩벨은 이민자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됐는데, 입으로 불어 만드는 큰 유리종은 상당히 비쌌다. 미국의 필그림회사는 웨딩벨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하여 크기는 작으나 견고하고 명쾌한 소리의 크리스털 종을 만들었다. 전통과 현재의 요구가 잘 부합한 실용적인 인기 선물이었다. 이 종은 싼 가격으로 '가난한 자의 웨딩종'이라 불렸다. 그러나 유리종의 청아한 소리를 듣는 부부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자가 된다. 참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결혼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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