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에는 정말 흔하지 않던, 무남독녀로 컸어요. 형제가 없으니 항상 마음 속에 외로움을 지니고 있었죠. 부모님이 하나라고 귀하게 키우셔서 처음 학교 입학했을 때 공주처럼 머리도 길게 하고 화장도 하고, 큰 리본도 달고 갔어요. 그러니 어땠겠어요. 남자애들이 치마도 많이 뒤집고 머리도 잡아당기고, 시기하는 여자친구들도 있고. 지금으로 치면 '왕따' 수준이었어요.
집에서도 언제나 혼자였어요. 부모님이 혹여나 다칠까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게 하셨거든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참 외로웠고, 어린 나이인데도 삶에 재미가 없다고 느꼈었어요.
초등학교 2~3학년쯤이었나. 학교 갔다오는 길에 흙길 옆 조그만 돌 위에 쪼그려 앉아있었어요. 그때도 풀이 죽어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 내 앞으로 펄쩍 뛰어올랐어요. 놀라서 다시 쳐다보니 작은 개구리 한마리가 도망가지도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게 아니겠어요?
그 개구리에게 "너는 참 좋겠다. 가고싶은 데도 다 갈 수 있고. 나는 친구집에도 마음대로 놀러갈 수가 없어"라며 하소연을 했어요.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는 그 눈망울이 아직도 잊히지않아요. 외롭고 힘든 내 마음을 유일하게 읽어준 친구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개구리가 마음 속 깊이 들어온 것 같아요."
◆수만마리 개구리 일일이 관리
경북 구미 금오천 인근 '라나커피'는 개구리 전시관으로 유명하다. '라나'는 스페인어로 개구리라는 뜻. 1층 카페에 들어서면 수백마리의 개구리 장식품들이 손님을 맞고, 2층 또한 300㎡ 넘는 공간 전체가 그야말로 개구리 천지다. 창틀과 계단은 물론 벽면을 가득 채운 진열장이 개구리로 가득하다.
도자기, 클레이로 만든 장식품부터 쿠션, 펜, 장난감, 열쇠고리, 양말 등 수만가지의 개구리 작품은 모두 윤영숙(61) 라나커피 대표가 44년간 개인적으로 수집한 것.
지난달 24일 라나커피에서 만난 윤 대표는 "개구리 종류만 1만가지, 총 갯수는 그의 3~4배쯤 될 것"이라며 "내가 갖고있는 모든 개구리가 머릿속에 다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매일 가게 오픈 전 서너시간씩 개구리 작품을 일일이 닦으며 관리한다. 수년전 청도에서 '개구리박물관'으로 인기를 끌다가 구미로 이사올 때도 작품 하나씩 에어캡에 소중하게 싸서 가져왔다. 그 때 수만가지 작품 중 딱 하나, 도자기로 만든 개구리 화분이 사라졌는데 아직까지 못찾았다고. 윤 대표는 "너무 속상하고, 항상 짠한 마음"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인테리어도 온통 개구리색으로
개구리를 너무 좋아해서일까. 윤 대표의 생활 공간은 온통 '개구리색'인 연두색과 초록색이다. 인터뷰를 하는 날도 그녀는 위아래 모두 초록색 옷을 입고 초록색 귀걸이, 개구리 모양의 목걸이와 브로치를 했다. 안경테에도 연둣빛이 돌았다. 그녀는 "연두색과 초록색을 너무 좋아한다"며 "예순을 넘으면서 초록색으로 치장하는 건 가끔 자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보통이 아닌가보다. 윤 대표는 "남들은 상상 못할 정도로, 개구리와 개구리색에 미쳐 살았다"며 "청도에 살 땐 이상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시관이 온통 개구리라면, 우리집은 온통 개구리색"이라고 고백 아닌 고백을 풀어놓았다.
"청도에 집을 지을 때, 남편과 티격태격한 끝에 안방 화장실만 초록색으로 꾸미기로 합의했어요. 그래서 벽은 연두색, 바닥은 초록색 타일을 깔아달라고 업체에 주문했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친정인 강원도 춘천에 다녀오니 세상에나 벽이 초록색, 바닥이 연두색이었어요. 업체가 거꾸로 착각한거예요. 초록색으로 짜맞춘 수납장이 벽에 묻혀버린걸 볼 때마다 스트레스였어요."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니 점점 안방과 거실로 개구리색이 번져갔다. 어느날은 침대 커버를, 또 어느날은 쿠션을, 커튼을, 테이블 커버를 바꾸는 식이었다. 그렇게 집 전체가 개구리색이 되어갔다. 결국 남편은 개구리색이 없는 평범한 방 하나만을 겨우 지키고 있단다.

◆인생의 고비도 개구리로 극복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며 사는 여유를 부러운 눈길로 보는 이들도 많지만, 윤 대표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외동아들이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온 것. 윤 대표는 "외동이다보니 눈에서 안보이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외동으로 크면서 부모님께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이어진 게 아닌가싶다"고 했다.
그 불안감과 우울이 너무 심해져서, 혼자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유서 2통을 담은 가방과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다리 난간 위에 올라섰었다. 그녀는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이 나를 구해줬는데, 그분은 지금도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그날을 매년 챙겨주신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울에 빠져있던 윤 대표에게 어느날 아들이 클레이를 사다주며 개구리를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다.
"개구리를 한마리씩 만들기 시작했는데, 내 손 끝에서 밝은 표정의 개구리가 나오는게 얼마나 신기하고 기쁘던지요. 그날부터 밤새는 줄도 모르고 개구리를 만들었어요. 클레이에 이어 천과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로 개구리를 만들면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우울을 극복하고,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녀는 아침마다 청소를 하면서 개구리들에게 일일이 "잘잤니"라며 말을 건다. 윤 대표는 "좀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으나, 초하룻날에는 깨끗한 물을 떠다놓고 절도 한다. 너네 덕분에 내가 편안하다, 내게 와줘서 고맙다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이어 "가족들에게도 말한 적 있다. 내가 혹시나 먼저 죽게 됐을 때, 매일 개구리들을 일일이 닦고 관리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나랑 같이 묻어달라고. 내겐 개구리가 그 정도의 보물이다. 다 내가 생명을 불어넣은 하나의 생명체들이라 생각한다"며 진심을 전했다.

◆세계 유일 '개구리 테마공원' 구상 중
이렇듯 개구리는 그녀의 삶 그자체다. 10대 때의 개구리는 '친구'였고 20, 30때의 개구리는 '희망'이었다. 내성적이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조금씩 발을 내딛을 수 있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기도 했다.
40, 50대 때의 그녀에게 개구리는 '꿈'이었다. 개구리 수집이 어느정도 규모를 이루면서 그것을 소재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꿈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60대인 지금은 개구리가 '삶의 동반자'란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부부 개구리예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끝까지 함께 같이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참 어렵더라고요. 부부 개구리를 보는 방문객들도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길 바라요."

윤 대표는 적어도 5년 뒤엔 '개구리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싶다는 계획도 귀띔했다. 1만5천㎡ 가량의 부지에 수집품 전시관을 비롯해 ▷개구리와 관련한 모든 상식을 담은 박물관 ▷개구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생태관 ▷관련 작품을 만드는 체험관 ▷개구리 연극·영화 공연장 ▷기념품 가게 등을 만들겠다는 것. 그녀는 "전국을 대상으로 부지를 알아보는 중인데, 지자체 곳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져 고민 중"이라며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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