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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수시로 손목을 까딱거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 지도 벌써 한 달 남짓이 된 것 같다. 게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른손이 퉁퉁 붓고 저림이 어찌나 심한지 칫솔을 잡는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들어 어떤 날은 양치를 하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사실 턱을 괴듯 손을 살짝 베고 자는 버릇이 있는데 처음에는 밤새 심각할 정도로 부동자세로 잠을 자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통증의 정도가 지속·상승하면서 혈액순환의 문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받은 튼튼한 골격과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가꾼 성실한 근육이 나름의 자랑거리일 정도였는데 특별히 무언가를 들다가 손목을 삐거나 다친 기억도 없었기에 답답하고 불편함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해져만 갔다. '손목 터널 증후군', 한두어 번 겨우 들어보았던, 나와는 아무 상관없을 것 같았던 병명을 진단받았다.

한 편의 뮤지컬을 'N차 관람'하는 관객들을 보통 '회전문 관객'이라고 칭한다. 뮤지컬 한 작품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 아니 한 편의 뮤지컬을 반복적으로 보다보면 볼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면서 누구라도 작품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그렇듯 작품과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 관객이 반복적으로 극장으로 향하는 모양이 회전문을 반복적으로 도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그렇게 칭한다. 필자는 비록 진짜 관객은 아니었지만 업무상 한 작품을 100번 이상 관람한 적이 있다. 그렇다보니 그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뮤지컬 '맘마미아', 그것이 나의 사랑이다.

'맘마미아'는 결혼식을 앞둔 스무 살의 어린 딸과, 그 결혼이 탐탁지 않은 엄마 사이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라온 딸은 아빠의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길 바라지만 누가 아빠인지 알 수가 없던 중 엄마의 과거 일기장에서 아빠일 가능성이 있는 후보 세 사람을 알게 되고 그들 모두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는 대형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하지만 결국, 아빠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보다 혼자서도 자신을 씩씩하게 잘 키워준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깨닫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렇듯 관람을 거듭할수록 처음에는 그저 유쾌한 분위기가, 그 다음엔 아침드라마 같은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놀라움이, 'ABBA' 음악이 선사하는 특유의 분위기 등이 남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지막 관람에서는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헛헛한 마음, 다 자란 딸이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Slipping through my fingers)'는 그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 마음에 들었더랬다.

요즘 나의 손을 보며 엄마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365일 중에 350일은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엄살이 너무 심하다고 핀잔이나 주는 다정하지 못한 딸로 살아왔다. 그런데 고작 한두 달의 가사노동 참여에도 내 손은 이렇게도 아우성을 친다. 어버이날의 효도가 카네이션 한 송이만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 그저 나를 이렇게도 사랑하시는 존재에 최선을 다해 감사하며 조금씩이라도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는지. 이렇게 아주 조금씩 도리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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