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코로나에 묻을 수 없는 이름이여

정인열 논설위원
'코로나19'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어선 가운데 101주년 3.1절을 맞은 지난 1일 오후 대구 도심 속 태극기가 외롭게 나부끼고 있다. 디지털국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정인열 논설위원

'권재갑 김문진 김윤섭 박용규 우기돈 윤학조 이보식 그리고 정휘창….'

대구에 중국발 우한 폐렴으로 시작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2월 18일 이후, 괴질(怪疾)의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대구는 모든 일상이 사라졌다. 코로나를 뺀 다른 일이나 사람들 이야기는 묻혔고 잊혔다. 확진자 역시 마치 수인(囚人)처럼 어느덧 이름 대신 숫자가 주어졌다. 그렇게 대구는 2020년의 봄날을 보내야만 했다.

온통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었으니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럴 만했겠지만 결코 코로나19에 묻혀 잊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상이었으면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려 했던 이름들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비록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시간을 거슬러 그들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게 도리라 여겨 불러본다.

앞의 일곱 이름은 대구 출신으로 101주년 3·1절을 맞은 날,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들이다. 이들은 1919년 대구 만세운동 참여로, 혹은 다른 독립운동으로 뒤늦은 서훈을 받게 됐다. 코로나19의 회오리 속에 이들 이야기는 제때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세인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으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랴.

이어 이틀 뒤 3월 3일, 조용히 다른 세계로 떠난 분이 있었으니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주인공 정휘창 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부회장이다. 그를 오늘 떠올린 까닭은 대구와 한국 아동문학에 끼친 공로도 크지만, 직접 발품 팔아 대구경북 독립운동사를 다룬 지역의 첫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를 지난 1991년 펴낸 업적 때문이다.

전문 역사가도 아닌 그가 대구경북의 피맺힌 항일 독립운동 현장 곳곳을 직접 누비고 다니면서 내놓은 책은 뒷날 대구경북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데 길라잡이가 됐다. 이후 그의 책을 바탕으로 대구경북의 빛나는 항일 투쟁사를 다룬 책이 경북 안동과 대구에서 잇따라 나왔고 독립운동도 조명되었으니 어수선한 날을 보낸 이제라도 그를 기억함은 마땅하리라.

또 다른 14명 이름도 있다. 생존 독립지사 2명(권중혁 장병화)과 독립운동가 후손 12명(허경성 나중화 이종찬 문희갑 박유철 우대현 정대영 이재윤 김진 김능진 박중훈 윤주경)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 100일 동안 대구를 초토화한 코로나19 회오리바람 속을 뚫고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역사관)을 세울 뜻을 세우고 발기인을 모으며 동분서주한 바로 그분들이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항일과 독립운동의 역사, 흔적, 자산이 풍부한 대구에 독립운동을 위한 변변한 시설 하나 마련하자며 처음 모인 게 지난 2월 13일. 대구 첫 모임 뒤 곧바로 덮친 코로나로 일상이 휩쓸리는 바람에 모든 게 중단됐다. 그러다 보니 뜻 맞는 발기인 모으는 작업도, 당초 3월 26일 예정의 발기인 행사 준비도 밀렸다.

하지만 코로나 괴질도 14명의 열정만은 막지 못했다. 300명 발기인 명단도 그래서 그럭저럭 채워졌다. 300명 동참자 대부분은 참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도 알았다. 먼저, 앞장선 14명 주인공 나이가 70~90대여서 그랬다. 또 대구 밖 인물도 여럿이고, 모두 독립운동가 집안이고, 한 후손은 3만3천㎡(1만 평) 넘는 땅까지 내놓은 기증에 또 놀랐다.

2월 이후 대구 일상은 코로나에 눌려 묻히고 잊혔다. 그러나 대구 독립운동과 관련한 일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그냥 묻고 넘길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실종된 봄을 보내며 뒤늦었지만 그들 이름을 이리라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에 쓸려 간 대구의 봄 속에서 잊힌 그들 이름을 건져 지상에 올리니 미안함을 조금 덜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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