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남쪽 집을 바라보며(망남가음·望南家吟)- 이규보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남쪽집은 부유하고 동쪽집은 가난하니 / 南家富東家貧(남가부동가빈)

남쪽집은 노래와 춤, 동쪽집은 통곡하네 / 南家歌舞東家哭(남가가무동가곡)

노래와 춤 어찌하여 저렇게도 즐거운고 / 歌舞何最樂(가무하최락)

손님이 집에 가득 술이 무궁무진일세 / 賓客盈堂酒萬斛(빈객영당주만곡)

통곡 소리 어찌하여 저렇게도 구슬픈고 / 哭聲何最悲(통곡하최비)

찬 부엌에 밥 연기가 끊어진지 이레라네 / 寒廚七日無煙綠(한주칠일무연록)

동쪽집의 아들이 남쪽 집을 바라보며 / 東家之子望南家(동가지자망남가)

크게 씹어 내뱉는 소리 대나무가 찢어지듯 / 大嚼一聲如裂竹.(대작일성여열죽)

그대는 보지 못했나. 장군 석숭이 날마다 미녀를 끼고 금곡별장에서 취해 지내는 것이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숙제의 맑은 이름이 천고에 우뚝함만 못한 것을!(君不見 石將軍日擁紅粧醉金谷 不若首山餓夫淸名千古獨(군불견 석장군일옹홍장취금곡 불약수산아부청명천고독)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부유한 남쪽집과 가난한 동쪽집의 확연한 대비다. 부유하기 때문에 남쪽집에서는 노래와 춤이 넘쳐나고, 가난하기 때문에 동쪽집에서는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이 집에 가득하고 술이 무궁무진한 남쪽집의 춤과 노래는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삶은 중국 부자의 대명사로서, 수많은 미녀들을 거느리고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 파묻혀 살았던 석숭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주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미녀를 하나씩 붙여 술을 마시도록 권하게 하고, 마시지 않으면 미녀를 죽였다는 막가파 인간 개망나니 말이다.

싸늘한 부엌에 이레 동안이나 밥하는 연기가 끊어진 동쪽집의 통곡 소리가 구슬프지 않을 수도 없다. 그들의 경제적 상황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와 다를 바가 없다. 이쯤 되면 동쪽 집 아들이 남쪽 집을 향하여 배알이 꼴려서 내뱉게 되는 절규와 성토가 없을 수가 없다.

"야 이 너무 자슥들아. 우리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너그는 맨날 고기에다 술을 쳐묵으며 춤추고 노래나 부르고 있고, 이 빌어먹을 더러운 세상, 확 엎어 뿔라마!" 줄잡아 800년 전에 지어진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에 등장하는 가난한 동쪽집 아들의 절규가 지금은 과연 사라졌을까? 이와 같은 질문 앞에서 망연자실의 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참말로 슬픈 봄날이다, 통재(痛哉)!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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