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10년 뒤인 1928년 캅카스 북부 샤흐티 탄광에서 석탄 채굴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자 소련 당국은 광산 기술자들을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일명 '샤흐티 재판'으로, 소련은 '제국주의 영국의 사보타주 사주(使嗾) 음모'를 날조해 5명을 총살하고 44명을 감옥으로 보냈다.
이후 '외국 세력'은 스탈린이 숙청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불러낸 편리한 '유령'이 됐다. 스탈린의 숙청 희생자치고 이 유령에 당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독일군의 전격전(電擊戰) 교리와 비슷한 종심작전(縱深作戰) 이론을 설계한 천재 군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가 대표적인 예다. 나치 독일과 내통했다는 것이다. 이런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스탈린은 나치를 설득해 투하체프스키와 나치 장군들이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었다는 허위 증거를 날조했다.
스탈린의 충견(忠犬)으로, 내무인민위원장(NKVD)으로 있으면서 1937∼1938년의 '대숙청'을 집행했던 니콜라이 예조프와 그 수하(手下)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국과 폴란드의 간첩이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말 그대로 죽도록 두들겨 맞은 뒤 총살됐다.
이런 '유령 불러내기'는 김일성도 따라 했다. 6·25전쟁 휴전 직후, '조선의 랭보'로 불렸던 월북 작가로 낙동강 전선에도 종군했던 임화를 '미군 CIC(방첩대)와 결탁한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1955년에는 박헌영을 '미 제국주의의 고용 간첩'이란 혐의를 씌워 저세상으로 보냈고, 1958년에는 김원봉을 '중국 국민당 장개석의 사주를 받은 국제 간첩'이란 죄목으로 숙청했다.
'외국 세력'이란 유령과 비슷한 유령이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진보 진영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불러내는 '친일 세력'이다. 윤미향 4·15 총선 당선인은 '정의연'과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했다. 이에 김두관 의원을 시작으로 여권 인사들이 '옳소'라는 '떼창'으로 추임새를 넣고, '문빠'들은 "정의연을 공격하면 토착 왜구"라고 악을 쓴다.
지난해에는 조국이 1961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무시(無時)로 불러 젖히니 '친일 세력 유령'도 참 피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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