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일체관계, 공생관계, 견제관계라는 세 가지 틀을 따라 움직인다.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일체관계가 되고, 권위주의 독재 국가에서는 이익을 함께 하는 공생관계가 될 때가 많다.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론이 정권을 감시하는 견제관계가 그 기본형태다. 그래서 정론직필이니 파사현정이니 하는 어구를 언론의 지표로 삼게 된다.
민주사회의 언론은 현실을 선택해 보여주고(미디어 의제) 그것을 여론(사회적 의제)으로 발전시켜 공공의 대책(공적 의제)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주권재민의 민주사회에서 여론 특히 공론을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언론의 의제 설정은 수많은 현실 가운데 취사선택 되고 가공, 조정, 조작, 왜곡을 거친 의사(擬似)현실이라는 한계점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의사현실이 진짜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느냐가 언론의 권위나 존재이유를 재는 척도가 된다.
문제는 모든 권력들이 언론시장의 자유로운 여론 활동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정치적, 법적, 사회적 압력이나 금전, 이권 등을 동원해 언론을 장악하려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권력과의 투쟁을 통해 조정, 재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 정권은 정부 권력과 좌파세력을 동원해 언론을 정권과 일체화시키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정권의 약점과 치부는 의제에 오르지 않도록 만들고, 정권이 알리고 싶은 사실(거짓)만을 퍼트릴 수 있게 됐다. 정권이 미디어 의제를 마음대로 주무르니 사회적 의제 또한 거기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 친일 등 파행적 이념공세나 야당에 대한 망언 공세가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문 정권의 선거 부정들, 넘쳐나는 정권 스캔들, 여당의 망언, 개인의 부도덕성은 용두사미가 되기 일쑤다. 특히 이번 4.15 총선의 부정 의혹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임에도 아직 미디어 의제로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고장난 언론 상황과 겹쳐지는 최근 보도의 하나가 문 정권의 취임 3주년 지지율이다. 1004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전국 평균 71%의 지지율을 보였고, 호남에서는 92%를 기록했다.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 대통령을 향해 문비어천가들을 헌상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 정권 3년이 조선 태종대의 모습이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대의 모습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3년의 결과가 그런 것이었고, 앞으로 있을 2년이 또 그런 시대를 연다면 국가나 국민으로서는 더 이상 다행스러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95% 신뢰수준(100번 조사해서 95번 같은 결과를 얻게 될 확률)이라는 이번 여론조사의 결과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크다.
한 시대의 정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정권의 기본성격과 연계된 양심, 조화와 균형, 실용, 결과의 네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문 정권의 기본성격은 사회정의를 바라는 6000여 명의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이 얼마 전 규정한 바와 같이 유사 전체주의 성향이 농후하다. 아마도 입법, 행정, 사법과 선관위, 방통위, 언론 등을 두루 장악한데 대한 우려의 표명일 것이다. 최근 감사원장이 검은 것을 검다고 말하라고 직원들을 질타한 것은 저간의 사정을 실감나게 설명해준다. 이제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전체주의 독재시대로 가고 있다는 푸념일 것이다.
역사 속의 전체주의는 파시즘, 공산주의 등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국가(실제로는 독재자) 목표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억누르는 체제였다. 그래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엄청난 인류의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문 정권의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율이 92%에 이른 것은 이런 전체주의의 또 다른 단서로 해석될만한 일이다. 반대 여론이 사라진 공간, 소수의견이 묵살되는 공간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어렵다.
문 정권의 기본 성격을 유사 전체주의로 규정하면 네 가지 정권 평가 기준은 손쉽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양심의 문제에서 문 정권은 국가적 양심, 사회적 양심, 개인적 양심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양심은 자유민주주의다. 사회적 양심은 이를 구체화시킨 공정한 선거, 공정한 재판, 공정한 감사 등을 의미한다. 개인적 양심은 인사청문회, 공천 등을 통해 나타나는 정권 구성원 개개인의 도덕규범으로 확인된다. 누누이 지적된 것이지만 문 정권의 양심 점수는 평가대상으로 하기에 부적합할 정도다.
둘째 문 정권은 국정의 성공조건인 조화나 균형을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국가 발전을 위해 써야할 돈과 자리를 추종 세력에게만 안겨주는 비상식을 예사로 여겼다. 모든 일을 이념의 잣대로 내편과 상대편으로만 구분하는 정권에게 조화나 균형은 허울 좋은 장식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의 사전에서는 셋째 기준인 실용적 사고라는 용어를 찾아볼 길이 없게 된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국정으로 나라가 총체적 파국을 맞고 있는데도 태평성대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어림잡아 본 문 정권의 지난 3년 평점은 71점이 아니라 거기에 마이너스를 붙여야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구태여 설명을 해본다면 코로나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적 결집, 이를 빙자한 복지예산 살포 등이 1차적 상황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반대세력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 저항여론에 대한 의도적 무시, 무기력한 야당의 내분과 자멸, 엉터리 역사교육 등등이 기저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권과 일체화된 언론의 탈선과 타락도 지지율 왜곡의 중요한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문 정권 초기 어느 세미나에서 문 정권이 조선조 4대 암군 중 연산군, 선조, 인조(고종은 논외로 했음)의 삼각파도를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명나라에 조선을 바치고, 청나라의 안보 위협을 주자학 이념으로 대처했던 세 암군의 파고가 한꺼번에 몰려올까 걱정된다는 이야기였다. 태종, 세종이라는 현실인식과 연산군, 선조, 인조라는 현실인식 가운데 어떤 쪽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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