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와 '강아지똥'을 통해 널리 알려진 동화작가 권정생이 손수 엮은 동시집 '산비둘기'가 반세기 만에 정식으로 출간됐다.
권정생은 경북 안동의 한 교회 문간방에 살며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1972년 6월 동시집을 손수 만들었다. 이른바 '수제 동시집'인 셈이다. 하나는 권정생이 소장하고, 다른 하나는 오소운 목사에게 건넸다. 권정생이 소장하던 책은 행방이 묘연하고, 오소운 목사가 간직하고 있던 다른 한 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서 해방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온 권정생은 1955년 여름에 부산에서 점원 생활을 하던 중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권정생은 몇 년 동안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데,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몸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권정생을 극진하게 보살피던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작고하고 만다. 권정생은 슬픔과 충격으로 거의 전신에 결핵균이 번지고 만다. 수술을 거듭하며 겨우 살아났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권정생의 몸과 마음에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고스란히 시에 담겼다. 권정생은 병에 걸린 자신을 극진히 돌보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느꼈던 상실감과 그리움을 동시집에 담았다.
'어머니가 아프셔요 / 누워 계셔요 // 내 아플 때 / 어머니는 머리 짚어 주셨죠 // 어머니 / 나도 머리 짚어 드릴까요? // 어머니가 빙그레 / 나를 보셔요 // 이렇게 두 손 펴고 / 살포시 얹지요 // 눈을 꼬옥 감으셔요 / 그리고 주무셔요 // 나도 눈 감고 / 기도드려요.'('어머니' 전문)
'엄마 별이 / 돌아가셨나 봐 // 주룩주룩 밤비가 / 구슬피 내리네. // 일곱 형제 아기 별들 / 울고 있나 봐 // 하얀 꽃상여 / 떠나가는데 // 수많은 별님들이 / 모두 불을 끄고 // 조용히 조용히 / 울고 있나 봐 // 주룩주룩 / 밤비가 내리네.'('밤비' 전문)
25편 중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가 모두 9편이 담겨 있을 정도로 권정생은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안타까움을 시로 옮겼다. 이밖에도 자연과 인간에 관한 시 등 청년 권정생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담겨 있다. 참신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하고 깔끔한 동시의 정수를 보여줌으로써 어린이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보리매미 / 잡았다 // 들여다보니 / 까만 두 눈 / 꼭 석아 같구나 // 감나무에 올라가 / 노래 부르던 // 매미도 / 나를 쳐다보네 / 꼭 석아 같은 얼굴로 // 먼 어느 곳에서 / 석아도 나처럼 / 그리울 거야.'('매미' 전문)
'산은 / 겨울에도 춥지 않고 // 함께 / 어긋마긋 손 잡고 // 엄마가 / 없어도 // 푸르게 / 푸르게 / 키가 자란다.'('산' 전문)
권정생은 손수 사인펜으로 동시를 쓰고 색종이를 활용해서 표지와 본문을 꾸몄다. 원본에 가깝게 정갈하게 꾸민 동시집은 권정생의 생애를 대변하는 듯하다. 맑고 투명한 동시를 보면 어린이에 대한 진실한 마음도 느껴진다. 96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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