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운 차림의 한 인물이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서 있어 얼핏 보면 신선도나 고사도(故事圖)처럼 보인다. 부채에 그리면서 그림 속 주인공도 깃털 부채를 든 재미있는 그림이다. 근대기 한국화가 이도영의 작품으로 '획수도강(畫水渡江)'으로 제목을 써넣었다. 제목 옆에 써넣은 글은 이렇다.
갑자(甲子) 중원일(中元日) 공축위옹(恭祝葦翁) 선생육십일세수(先生六十一歲壽)
관재(貫齋)
풀어보면 1924년 7월 15일(음력)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 선생의 회갑에 이도영이 그려드린 축수도(祝壽圖)임을 알 수 있다. 생일이 더운 철이라 이 부채를 훨훨 부치시며 더위를 쫓고, 머리도 식히고, 나쁜 기운까지 날려 보내 더욱 장수하시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바로 전 해에 오세창은 2년 8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세창과 이도영은 인연이 길다. 오세창은 1906년 대한자강회를 이끌 때 이도영에게 교육부 간사원을 맡겼고, 1909년 창간한 『대한민보』에 제국주의 일본과 친일파를 풍자하는 시사 삽화를 그리게 했다. 이로 인해 이도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로 자리매김 된다.
이도영은 자신을 이끌어준 오세창의 생일 때 그림을 그려 자주 선물을 했는데 이 해는 회갑이 되는 해였으므로 각별하게 아이디어를 낸 이 그림을 선물했다. "물을 가르고, 강을 건너다"라는 제목처럼 물결을 헤치고 강을 건너는 인물로 오세창을 그렸다. 획수(畫水)는 곧 획수(劃水)로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 주몽의 고사이다. 동명왕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장마로 넘치던 물이 가라앉는 신이(神異)한 일이 일어나 비류국이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못했다고 이규보의 장편서사시 「동명왕편」(1193년)에 나온다. 이규보가 동명왕을 문학화하며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자부심을 북돋웠듯이 이도영은 일제강점의 암울한 시기 오세창의 분투를 동명왕에 빗댄 것이다. 머리에 쓴 상투관과 신선 풍 옷차림으로 동명왕이자 오세창을 나타냈는데 물을 내리치는 획수의 도구로 채찍 대신 우선(羽扇)을 든 것은 환갑의 오세창에게 어울리는 점잖은 물건으로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획수는 독립운동사의 획기적 사건인 삼일운동에 독립선언문의 인쇄 책임을 맡았던 오세창의 구국적 행위를 나타내고, 도강은 오세창의 호와 연관된다. 물 위에 서서 맨 몸으로 강을 건너는 도강의 인물은 달마대사이다. 석가모니로부터 이어진 불교의 28번째 조사인 보리달마는 520년 남인도에서 중국 양나라로 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갈대 한 가지를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갔다는 일위도강(一葦渡江), 절려도강(折蘆渡江)의 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세창의 호 위창의 갈대 위(葦)와 큰물을 뜻하는 창(滄)은 여기에서 나왔다. 아들 오일륙에 의하면 오세창은 김홍도의 달마그림을 애장했는데 평소 "나의 호는 이것이다"라고 했다.
이도영은 오세창이 실천한 독립운동을 동명왕의 획수로 비유하고 오세창의 호 위창을 도강으로 풀이했다. 김유신 고사를 그린 '석굴수서(石崛授書)'를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등 역사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상을 할 수 있었다. 오세창 선생은 개혁사상가, 개화운동가, 독립운동가, 언론인으로 민족의 스승이시고, 서예가, 전각가, 서화 감식가, 서화 수집가, 미술사학자이신 한국미술사의 큰 스승이시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생각하며.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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