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대견사(大見寺)가 복원 및 중창된 지 6년째를 맞고 있다. 대견사는 중창 이후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가피와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약 전국적인 기도 도량으로 부각되고 있다.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이 22년 동안 주석하고, 일제강점기에 강제 폐사된 비슬산 대견사는 지난 2014년 3월 중창됐다. 특히 대견사는 현재 전국 3천200여 곳의 폐사지 가운데 중창 제1호 사찰로 기록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대견사의 첫 이름은 보당암으로 불렸다. 보당암은 일연 스님이 22세 때 승과에 장원급제한 후 초임지로 주석한 곳이다.
지난 2012년 진행된 대견사 발굴조사에서 '辛亥五月◯'이라는 문자가 새겨진 암막새가 출토됐다. '辛亥'년의 간지에 해당하는 연도는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과 1431년(조선 세종 13년)이다. 암막새의 평면형태 등을 보았을 때 고려말∼조선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문선'에 실린 이첨의 글 '보당암중창법화삼매참소'를 통해 보당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중창 추정시기는 1402년(태종 2년)이며 사찰 명칭 또한 대견사로 바뀐 것으로 알 수 있다.
지난 2002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의 시굴조사 과정에서 추정 건물지 6동과 암·수막새 파편들이 확인됐다. 특히 출토된 암막새에서 '大見寺'의 명문이 나와 그동안 전설로만 전해오던 대견사의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됐다.
이때 수습된 기와 조각에 남아 있는 '만력 39년(1611년), 숭정 6년(1633년)' 등의 명문으로 봐 여러 차례 중수·중창 됐음을 알 수 있다.
대견사는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1900년 중수됐으며 영친왕이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 뒤인 1908년 몰락했고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비슬산 대견사는 주지 법희 스님이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기도도량으로 기틀을 다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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