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목동의 노래(목우사·牧牛詞) - 고계(高啓)

너의 소는 뿔이 꾸부정하고 / 爾牛角彎環(이우각만환)

나의 소는 꼬리 털 빠지고 짧네 / 我牛尾禿速(아우미독속)

둘이 함께 짧은 피리 긴 채찍 들고 / 共拈短笛與長鞭(공념단적여장편)

남쪽 고개 동쪽 언덕 쫓아다니네 / 南隴東岡去相逐(남롱동강거상축)

저물녘 갈 길 멀고 소는 더딘데 / 日斜草遠牛行遲(일사초원우행지)

피로한 지 배고픈 지 내가 안다네 / 牛勞牛飢唯我知(우로우기유아지)

소 타고 노래하다 소 아래 쉬고 / 牛上唱歌牛下坐(우상창가우하좌)

밤에 돌아와서는 소 곁에 자네 / 夜歸還向牛邊臥(야귀환향우변와)

긴 세월 소 길러도 근심 없지만 / 長年牧牛百不憂(장년목우백불우)

세금 때문에 내 소를 팔까 봐 걱정이네 / 但恐輸租賣我牛(단공수조매아우)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여러 마리의 소를 키웠다. 워낙 정이 들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 두어 마리는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 얼굴 그 표정을 아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소가 다시 돌아와 수많은 소 떼 속에 섞여 있다 해도 찾아낼 자신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소들이 가끔씩 내 시 속으로 걸어들어오기도 한다.

"그 소가 생각난다, 내 어릴 때 먹였던 소/ 샐비어 즙을 푼 듯 놀이 타는 강물 위로/ 두 뿔을 운전대 삼아, 타고 건너오곤 했던// 큰누나 혼수 마련에 냅다 팔아먹어 버린,/ 하지만 이십 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와서/ 달밤에 대문 밖에서 음모〜 하며 울던 소"

명나라의 시인 고계(高啓)의 작품 속에도 목동 둘이 소를 키우고 있다. 뿔이 꾸부정한 소는 친구네 소고 꼬리 털이 빠져 짜리몽땅한 소는 우리 집 소다. 그러므로 어느 소가 어느 집 소인지 헷갈리게 되면, 뿔과 꼬리를 살펴보면 된다. 그들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불기도 하고, 풀을 뜯고 있는 소 옆에 누워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일어나는 뭉게구름 보며 쉬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소 근처에 누워서 소와 함께 잠을 잔다. 늘 소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지금 소가 피곤한지 배가 고픈지 소가 처한 상황도 내가 제일 잘 안다. 순하디 순한 눈망울을 가진 소와 함께 하는 생활은 정말 행복하지만 대단히 조마조마 하기도 하다. 아버지가 세금에 시달리다 못해 소를 냅다 팔아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올봄에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한두 번 되풀이되다 보니 자꾸만 내 어릴 때 먹였던 선하디 선한 소가 그립다. 나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게 새삼 걱정되는 오월이다, 아아!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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