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에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은 지 3개월 만에 진료실 문을 다시 열었다.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지 확인한 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우한은 물론이고 몇 년간 중국을 다녀온 적도 없는데,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중국 사람인 거 다 아니까요." 중국 이주노동자 한 분이 그동안 힘들었다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중국 우한 폐렴 대응 안내문' 1월 말 필자의 병원에 붙었던 안내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병 명칭 가이드라인에서 특정 지역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부정적인 낙인 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대구 폐렴이라고 하면 기분 좋겠습니까?' 필자의 항의 때문은 아니겠지만 며칠 뒤 다시 붙은 안내문에는 '코로나19 감염증'으로 병명이 바뀌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중국 또는 중국 사람에 대한 '혐오 바이러스'는 이미 많이 퍼져있었다. 신종 바이러스가 중국의 실험실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중국인이 먹는 '박쥐탕'이 원인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이러한 혐오가 신종 감염병과 만나자 끔찍한 '차별 바이러스'로 진화했다. 중국인 출입을 막는 식당까지 나타났다. 많은 전문가가 감염병 예방에 실효성이 없다고 설명했음에도 '중국 봉쇄'를 하지 않는 방역 당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주변에서 들렸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메랑이 되어 대구를 향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하자 동대구역에 내리는 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서울 대형병원에 갔다가 대구 환자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대구 봉쇄' 이야기도 들려왔다. 대구 시장은 '대구 폐렴'이라고 부르지 말 것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구를 향한 혐오와 차별에 시민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동시에 많은 국민들은 대구를 사랑했다. 전국에서 많은 의료진이 최전선 대구로 달려왔다. 많은 국민들이 보내 준 응원의 편지와 구호품이 병원에 도착해 지쳐가던 대구 의료진에게 큰 힘이 되었다.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소독약 때문에 거칠어진 의료진의 손을 염려해 핸드크림을 보냈다. 광주는 확진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애태우던 대구 환자를 위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병상을 제공했다. 나눔과 연대의 상징인 518개의 따뜻한 주먹밥 도시락까지 보내왔다.
의료진들의 헌신과 국민들의 따뜻한 응원 덕분에 대구가 큰 어려움을 서서히 극복해 가고 있다.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따뜻한 연대와 휴머니즘만이 코로나 19를 이겨내는 '사랑의 백신'이 될 수 있음을 대구가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 달서구 보건소가 성서 공단 안에 설치했던 이주노동자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필자도 힘을 보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단속으로 추방될 걱정 없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검사 후 선물로 받은 마스크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에게 인사하는 한 이주노동자의 표정이 5월의 햇살만큼이나 밝았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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