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윤미향에게 ‘운동’은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였나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3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에 불타는 열정이 보태졌고,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의협심과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끌어안는 감정이입이 상승(相乘)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운동'을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성금과 기부금이 들어오고 액수도 갈수록 커졌다. 어느 순간 '딴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처음에는 찜찜했으나 딴마음이 하는 일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도 없고, 들여다보려 해도 '운동'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주눅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고착되면서 찜찜함은 점차 엷어져 갔을 것이다.

그러자 '운동'에서 생각지도 못한, 꽤 쏠쏠한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즈니스는 철저한 비밀 유지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또 '운동'의 성스러움 때문에 운동을 마쳐야 할 전기(轉機)가 도래해도 이를 거부하고 계속하겠다고 해도 외부인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리스크 0'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연대의 기부금 유용 의혹과 그 중심에 있는 윤미향 씨의 행적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스토리'를 구상하게 할 것 같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는 팩트는 이런 '스토리텔링'을 억누르지 못하게 한다.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한 저들의 '해명'을 보면 그렇다. "기부금 내역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말뿐이다. 이 말을 믿게 하는 것은 참 쉽다. 그 '투명한 관리'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그러나 거부했다. 세상 어느 NGO(비정부기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며, 기부자가 공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냥 믿으라는 소리다. 오래전 개그맨 김상호의 배꼽 잡는 멘트가 생각난다. "나는 나를 믿는데 너는 나를 왜 못 믿어?"

그리고 이런 억지 해명에 대한 비판은 '친일 세력의 공격'으로 몬다. 광복된 게 언제인데 지금 무슨 친일 세력이 있다는 것인지 아연(啞然)하지만 그렇다 치자. '그X의 친일 세력'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라도 공개해야 하지 않나?

정대협이 불완전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할 수 있었다. 바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다. 정대협은 피해자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따르면 '피해자의 의견'은 '빨리 일본과 합의해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생존 피해자 47명 중 35명이 일본 자금을 받은 사실로 보아 천 전 수석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하다. 최근에는 윤 씨가 일본 자금을 받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결국 정대협과 윤 씨의 '피해자 중심주의'와 피해자들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달랐던 것이다.

윤 씨는 왜 그랬을까? 천 전 수석의 '증언'이 그 해답의 실마리가 될 듯하다. 그는 일본 국가 예산으로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일본 측 안을 설명하자 윤 씨가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한 천 전 수석의 '해석'은 이렇다. "제가 구상하던 해법이 할머니들에겐 나쁠 게 없지만, 정대협으로서는 이제 문을 닫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정대협엔 사형선고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이라면 윤 씨가 곤혹스러워했을 만도 하다. 피해자의 '피해자 중심주의'대로 되면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좌'라는 명망(名望)을 안기고, 어떻게 썼는지 아무도 들여다볼 생각을 못 하는 기부금이 몰려드는 수익성 높은 '운동 사업'을 접어야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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