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구상화가 김종언

김종언 작
'눈 내리는 밤 풍경'의 작가 김종언이 자신의 화실 작품 앞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김종언 작 '밤새... 서울 홍제동'

화가와 일기예보, 일기예보와 화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적어도 구상화가 김종언(55)에게는 상관관계가 크다. 그가 15여 년 째 추구하고 있는 '눈 내리는 밤 풍경'인 '밤새…' 연작을 작업하기 위해서는 일기예보에서 눈이 내린다는 지역이 있으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전국 어디라도 갈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애마(?)인 낡은 봉고차에는 언제 어디서든 숙식이 가능한 채비가 갖춰져 있다.

고향 봉화에서 어릴 적부터 그림이나 만화책을 베껴 그리면 주위에서 '잘 그렸다'는 평에 더욱 신이 나 그림을 그렸던 김종언은 그 칭찬에 떠밀려 화가가 됐다고 한다.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로 도로변에 있는 건물 2층(188㎡)은 작가가 25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작업실로 벽면에 그의 '밤새…' 연작 수십 여 점이 놓여있어 작가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84학번)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골목풍경 등에 관심을 두고 구상계열 그림을 그렸고 당시 유행하던 공모전에 출품, 1991년 대구시공모전 대상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상단체인 목우회 공모전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

"그냥 구상계열 그림이 좋았어요. 다른 미술사조에 대해서는 차라리 요즘에야 관심이 가는 데 그 이유는 저의 그림에서 공간처리의 측면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기가 된 것 같아서요."

작가는 연륜이 쌓여가면서 그림에 대한 생각도 넓어지고 어찌 보면 자꾸 그림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함으로써 그에게 그림은 삶의 수행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언의 첫 개인전은 1996년 봉성갤러리에서였다. 이로부터 올해로 화업 24년째이다. 당시 그는 작품 '설날' '언덕 위의 과수원집' 등서 보여주듯 주로 자연에 대한 향수로서 고향 봉화의 전원풍경과 많이 닮아 있다. 이때 그림은 주로 나이프를 이용한 유화작품이 주류를 이루었고, 특히 눈이 오는 풍경, 바람이 부는 모습, 비가 오는 들판, 안개 낀 마을 등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특정 현상에 초점을 맞춘 화풍이 두드러져 보였다.

이러한 김종언의 화풍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 시기는 2006년을 전후해서 그의 관심이 '자연'에서 '사람'으로 바뀌게 되면서부터이다. 또 이 시점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밤새…'연작이 등장하게 됐다.

"전원을 그릴 때는 풍경만 그렸으나 도시를 그리게 되면서 사람을 그리게 됐고 사람이 다녔던 흔적을 그리게 되다보니 '밤새…'연작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작가는 스스로 '밤새…'연작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굉장히 긴장도 되더라고 했다. 이런 까닭에 그의 눈 내리는 밤 풍경은 보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다.

그의 '밤새…'작품들은 보고 있노라면 한겨울 눈이 내리는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무척 따뜻하게 느껴진다. 가물거리는 가로등 아래 눈이 쌓여가는 골목길, 판자 지붕이 다닥다닥 연달아 층을 이루는 서민 동네, 눈 쌓인 아스팔트 길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 어디론가 긴 여행을 준비하는 기차역 전경, 낡은 대문이 보이는 좁은 골목길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환경미화원 등등은 어디선가 한 번쯤을 마주쳤을 법한 기시감마저 들게 한다.

또한 '밤새…'작품들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성이다. 작가는 작품마다 출사했던 장소를 꼭 적어둠으로써 작품 하나하나에 역사적 기록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전에 작품을 위해 찍었던 사진들을 작품 완성 후에 폐기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요즘에 출사 나갔던 사진도 되도록 컴퓨터에 보관해두려고 합니다."

사실 김종언은 고교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대상이 나타나면 언제든 찍을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1950년대 근대 미술을 접하다 보니 작품들의 제목에 장소가 적혀 있는 걸 보고 이제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부터 그 역사성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작가는 앞으로도 눈 내리는 겨울밤 풍경을 계속 그리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눈 오는 밤풍경은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을 많이 지니게 함에 따라 이야기 내용이 풍부해진다는 것.

사실 그의 '밤새…' 연작은 실사에 가깝고 장소에 대해 꾸밈이 없다. 또 '밤새…'연작에서 보이는 밤을 표현하는 회색조의 화면은 작가가 스스로 창조해 낸 색감이다. 작업은 전적으로 유화작업이며 작품에서 보이는 눈(雪)은 공간 처리감을 높이기 위한 조미료와 같다.

"최근 들어 제 '밤새…' 작품들에서 눈이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물의 형태도 바뀔 수도 있겠죠. 실사에 대한 묘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형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와 함께 김종언은 사진 찍는 것도 많은 신경을 쓴다. 겨울이 되면 그는 광주나 목포, 강원도 어디든 눈이 내린다는 소식만 있으면 달려간다.

이 시간 이후로 김종언 '밤새…'연작이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무척 궁금하다. 현재 그는 한유회에 소속돼 있다.

"미술가로 제 인생을 선택하게 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천상 그는 화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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